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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 소설가
"좋겠다, 너는. 아직 애가 문쾅까지는 안 할 테니."

사춘기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은 종종 나에게 말했다. '문쾅'이란 엄마와 이야기하다 말고 짜증이 난 아이가 제 방문을 쾅! 소리 나게 닫고 들어가 버리는 거다. 나도 안다. 어린 시절 많이 해본 짓이다. 물론 그럴 때마다 우리 엄마는 빗자루를 들고 나보다 더 큰소리로 방문을 발로 차고 쳐들어 왔지만. 우리 집 문짝은 몇 번이나 부서질 뻔했다. 내 딸은 여덟 살,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다. 중학교 2학년쯤 되면 우리 아이도 그러겠지, 막연히 상상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상상은 나에게 너무 이르게 찾아왔다.

단짝 친구 집 폐 끼치는 것 같아서
여덟살 딸에게 출입금지 시켰더니
짜증 내며 방문 '쾅' 어이없는 현실


문제는 단짝 친구였다. 단짝 친구 생기는 거야 좋지. 온종일 놀이터에서 함께 놀아도 모자란 것쯤 나도 안다. 친구 데리고 우리 집에 가면 안되냐고 조르는 것, 이해한다. 그래서 자주 그렇게 해주었다. 과일도 깎아주고 풍선껌도 주고 가끔은 저녁도 챙겨주었다. 그러다 보니 친구 엄마도 미안한 마음에 우리 아이를 초대했다. 문제는 너무 자주 그런 일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친구 엄마에게 폐를 끼치는 일 같아서 보다 못해 친구 집 출입금지를 명했더니 아이가 짜증을 버럭 냈다. "아니, 엄마 말을 거스를 참이야?" 나도 버럭, 잔소리를 쏟아냈다. 조막만 한 녀석이 도대체 이유가 뭐냐고 따지고 들기에 조리 있게, 고작 여덟 살은 반박도 못 할 수준으로 심도 있게 설명도 했다. 아이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로 나에게 대들었다. "이건 내가 안 가기로 결정한 거지, 엄마가 그렇게 시켰기 때문은 아니야!" 어라? 순순히 수긍하지는 않겠다는 거지? 나도 오기가 생겨 다시 한번 단단히 대답을 받아냈다. "안 가겠다는데 엄마는 왜 내 대답을 의심해?" 그러고는 그것, 아직 나에게 오리라고 생각해 본 적 없는 '문쾅'이 일어난 것이다. 아아, 지금 내 눈앞 광경이 현실이라고? 나는 어이가 없었다.

거실에 앉아 잠깐 마음을 가다듬었다. 내가 지금 당장 저 방문을 열어젖히고, 이건 지금 초등학교 1학년이 할 반항의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을 냅다 알려주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이따위 문쾅 따위에 연연하는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며 무시할 것인지 고민했다. 아니, 벌써 이러면 중학교 2학년 땐 어쩔 셈이야? 10분쯤 지나 아이의 방문이 열렸다.

"나, 딸기 제티 먹으면 안 돼?"

아이는 그렇게 말했다. 딸기 제티를 먹으면 안되냐고.

잠시후 '딸기 제티' 먹는다고 나와
화해 제스처에 나도 웃으며 먹었지


딸기 제티의 의미를 나는 안다. 아이는 우유에 타 먹는 제티를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때 우유가 싫어서 초콜릿 가루나 딸기 가루 같은 걸 타주면 잘 먹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우리 엄마는 코웃음으로 내 의견을 무시했다. "먹기 싫으면 먹지 마!" 그런 식이었다. 어른이 된 나는 마트에서 초코 제티를 보며 달콤한 우유를 신나게 마실 아이를 상상하며 한 통 사 왔지만 우리 아이는 흰 우유를 잘 먹는 아이였고, 초코 제티는 유통기한이 지날 때까지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 그러고도 나는 딸기 제티를 한 통 또 사왔다. 아이는 우유 맛이 유치해진다며 역시 거부했다. 내가 구시렁댔다. "아이참, 엄마는 딸기 우유 먹는 네가 너무 귀여울 것 같아서 사 왔는데!" 내 말에 아이는 딸기 제티를 한 번 먹어주었다. "내가 딸기 우유 먹는 거 보면 좋아?" "응!" "왜?" "귀여우니까!" 나는 까르르 웃었다.

그러니까 쾅 닫고 들어간 방문을 열고 나와 "나, 딸기 제티 먹으면 안 돼?" 라고 말한 건 아이가 내민 화해의 제스처다. 내가 어떻게 했을까?

어떻게 하긴. 발딱 일어나 "진짜? 딸기 제티 줄까? 엄마도 같이 한 잔 마실까?" 그러면서 냉장고에서 날름 우유를 두 개 꺼냈지. 역시나 분홍색 딸기 우유는 귀엽고 우스운 맛이었다.

/김서령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