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정치사에 지난 한 주는 '윤석열(존칭 생략)의 시간'이었습니다. 제20대 대통령 취임 이후 첫 주말도 보냈습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매일 '당선인'으로 썼던 기억 때문인지, 아직도 '당선인' 존칭이 먼저 떠오르네요.
아마도 '윤석열의 시간'은 이처럼 '번갯불에 콩 볶듯' 빠르게 진행될 것이고, 앞으로 변화무쌍한 일들이 많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입니다.
옛 청와대라는 상징적 역사와 국가적 의미가 이제는 용산시대로 바뀌는 전환기가 되었습니다. 모든 '시공'이 바뀌는 찰나의 순간이라고 할까요.

기자도 지난 한 주, 급변하는 용산시대에 적응하는데 시간을 많이 소비했지요. 대통령실을 다시 출입하게 되면서 분주한 한 주를 보내게 됐습니다.
5년 만에 다시 출입하는 대통령실. 명칭이 아직 정해지지 않아 '뭐라 불러야 할지', 모든 게 익숙하지 않고, 낯설기만 합니다.
삼각지 출근길은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주차장이 마련되지 않아 지하철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시간적인 출근 거리는 짧은데, 지하철을 3번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더군요.
대통령실 주변은 아직 어수선합니다. 서문을 정문 삼아 들어가면 청사 건물 오른쪽 측으로 육군회관과 합동참모본부, 좌측으로 국군 응급 병동이 있고, 후문 쪽에는 국방부 검찰단과 의장대대 등 군 관련 시설물이 줄지어 있습니다.
청사의 경우 모두 10개 층이지만, 지금은 몇 개층 빼고 거의 대부분 공사 중입니다. 사무실 공사로 일부 직원들은 정부종합청사로 출근하는 이도 있다고 합니다.

사람도 난 사주가 제1의 운명이라면 이름은 제2의 운명이라고 할 정도로 이름은 중요합니다.
청와대 이전에 대해 좀 긍정적인 사람은 새로운 '용산시대'에 걸맞게 새로운 시대를 꿈꾸고 있습니다.
갈등과 반목이 아닌 진정한 통합의 시대를 말이죠.
그래서 청와대를 개방해 '명소'를 만드는 과정에 국민 통합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에서 민의의 전당인 용산시대를 꿈꾸는 것이지요.
용산 청사 주변의 거대한 부지를 이용한 공원이 조성되면 대한민국의 상징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이유이고요. 물론 갈 길은 멀지만, 기자도 같은 느낌 지울 수 없습니다.

과거 대통령 순방을 위해 미국 출장길에 백악관과 주변을 취재하면서 역시 개방적인 나라라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 용산청사를 백악관 주변처럼 개발만 잘하면 더 좋은 명소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대통령실 주변 환경과 시설물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첫 출근 이후 2~3일 동안 청사 주변을 걸으면서 윤 대통령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한번 느껴 보려 했습니다.
급작스런 이전으로 국방부 직원들의 불편함과 불만은 현장에서 바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경내에서 만난 한 국방부 여직원은 "PX에 물건 사러 다녀오는 길인데, 대통령실 주변에 펜스를 쳐 돌아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매점 직원도 "냄새나는 음식을 못하게 합니다"고 불편함을 호소했습니다.
지엽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보완해야 할 대목이겠지요.

먼저 청와대에서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기고, 10일부터 새 용산 집무실에서 근무를 시작하겠다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발표 후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의 말처럼 어려운 일이지만 국가의 미래를 위해 내린 결단인 만큼 신속하게 처리해 나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3일 대통령 청사를 돌아보며 직원들에게 "맨땅에 헤딩하는데 구나. 힘들지만 조금만 참자"고 격려했습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기자가 주변을 돌아봤을 땐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가 나란히 배치돼 있고, 국가 안보 지휘 시설 등이 갖춰져 있는 곳이어서 안전과 경호에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유사시 완벽한 경호시스템을 갖춘 청와대와는 상황은 다르지만, 어차피, 경내 시설은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민간인 통제구역인 데다, 적어도 이 시설에 근무할 요원에 대해서는 국가적으로도 '배경조사'도 하고 '검증'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배치된 건물도 모두 군사 시설이어서 문제가 있으면 보완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짧은 식견일까요.
이미 국방부는 옆 건물인 합참 청사로 이전했고, 국방부 지하와 합참 지하에도 유사시에 대비한 지하벙커가 마련돼 있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윤 당선인은 취임에 앞서 10일 자정 국방부 지하벙커에서 합동참모본부의 보고를 받았습니다.
국방부 관계자에 의하면 국방부 지하 2층에 설치된 지하벙커가 청와대보다 더 정밀한 분석이 가능한 시스템이라는 전언도 들었습니다.
경내에는 전시용인지 모르지만, 장갑차 한 대가 세워져 있어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합참 연병장에선 장교들의 체력 테스트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배 나온 장교'(?)들이 헉헉 거리며 연병장 11바퀴를 뛰는 모습이 이채로웠습니다.
퇴근길엔 퇴근한 군인들이 반바지 러닝팬츠 차림으로 경내를 달리는 모습이 꽤 여유롭게 보였습니다.
아마 대통령 집무실에서도 다 내려 보이는 위치여서 윤 대통령이 보았더라면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청와대 이전에 대해선 '일방통행식 독주'라고 맹공을 퍼붓고 있지요.
서울시장에 출마한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는 엊그제 한 방송에 나와 "(용산에)16개 부대의 6천500면이 근무하는데 그 사람들이 모두 경호 때문에 총의 공이(발사장치)를 제거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청와대는 수십 개 회선을 연결해 정보를 모으는 '워룸'이 있는데 용산은 그런 시설이 없다"고 했는데, 이 사실에 대해선 추가 취재가 필요해 보입니다.

윤 대통령의 말처럼 집무실 주변의 공원 개발을 위한 조성은 이미 시작된 듯했습니다. 이미 남쪽 펜스 위치에 큰 대문이 만들어져 있었고, 펜스 라인을 잡아 놓고 미군의 부지 반환만 기다리는 듯해 보였습니다.
벌써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에 앞서 50만㎡ 부지가 반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고, 국방부 청사 인근 주한미군 장군 숙소 부지가 이르면 올해 공원으로 조성돼 시민들에게 개방된다는 계획도 나왔습니다.
기자가 현장을 둘러봤을 때도 거리가 멀어 정확하지는 않았으나 이미 남쪽 펜스 구역을 설정해 공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강 쪽으로 멀찌감치 보이는 대지에 국민 공원으로 조성된다면 맨해튼의 센터럴 파크 못지 않은 상징적 공원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백악관의 경우 사무실과 민간인 통제선인 펜스까지 떨어진 거리가 멀지 않지만, 용산청사의 경우 대통령실 건물과 펜스까지 실거리가 꽤 길었습니다. 정확하지 않지만 300m 이상은 족히 돼 보였습니다.
그 사이에 국방부 청사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둘레길'이 가로 지르고 있었습니다.
청와대 인근의 경우 인사동에서 삼청동으로 이어지는 차 없는 거리에 '패션' 용품이 물결을 이루고 있는데, 이곳에선 육·해·공군의 제복 맞춤 집의 진열장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보통 '진열장' 하면 아리따운 옷가지, 신발 액세서리 등이 떠오르는데 꽤 이색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골목골목 군인들의 박봉을 의식하듯 줄지어 있는 선술집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미래의 용산시대는 어떤 모습일까.
어느 건축학자는 '신의 한 수'라고 대통령실 용산이전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버려두면 흉물이 될 것이고 잘 개발만 하면 세계적으로 매혹적인 도시가 될 것입니다. 북쪽으론 샹젤리제 거리를 만들어 사회·상업적 활동의 중심지로 개발되고 남쪽으론 레저와 문화, 관광을 살리는 서울의 새로운 명소가 되길 기대해 봅니다.

■ 취재기를 쓰는 동안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주말(14일) 부인 김건희 여사와 함께 사저 인근 백화점과 광장시장, 한옥마을을 산책했다는 알림이 있었는데, 오히려 삼각지 상권을 한번 훑어 보았다면 어땠을까. 더 좋은 구상이 나왔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