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근대사회의 도시공학이자 공간의 정치론으로 '주례' '고공기(考工記)'를 꼽을 수 있다. 우리의 서울, 한양도 이 '고공기'에 따라 만들어졌다. '고공기'를 보면, 도성의 공간은 좌묘우사(左廟右社)와 전조후시(前朝後市)가 원칙이다. 군자남면(君子南面)이라 해서 왕성을 남향으로 짓고, 왼편에는 종묘를 오른편에는 사직단을 두었다. 그런가 하면 한양 도성의 사대문도 음양오행론에 입각해 명명됐다. 한양의 정문인 남대문은 남쪽을 뜻하는 글자인 '예(禮)'자를 따서 숭례문으로, 동대문은 동쪽을 뜻하는 '인(仁)'자에 풍수적 비보 차원에서 갈지자를 추가하여 흥인지문으로, 서대문은 서쪽을 뜻하는 '의(義)'자를 따서 돈의문으로, 북대문 역시 북쪽을 뜻하는 '지(智)'자를 따서 홍지문으로 그리고 한양의 정중앙에 위치하여 시간을 알려주던 종각은 중앙을 의미하는 '신(信)'자를 취하여 보신각으로 이름을 지은 것이다.
서울은 물론 경복궁이나 미국의 백악관 등 모두 그 나라, 그 사회의 정치철학을 반영하고 있다. 공간의 정치학이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를 놓고 숱한 논란이 있었지만 그 논란과 별개로 모두가 다 합당한 이유가 있어 현재의 모습으로 조성된 것이다. 또 대통령 집무실도 집무실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 나라의 정치철학과 국격을 보여주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한양 도성 사대문 음양오행론 입각해 명명
용산 이전 합리적인 선택이었는지 아쉬움
그런 청와대가 갑자기 시민의 휴식처로 탈바꿈됐다. 윤석열 대통령 측에서는 이를 공약 사항이며 탈권위 소통 행보의 일환이라 밝히고 있으나 국민들의 다수는 청와대를 방문해 보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이 집무실을 옮길 필요까지 있었는지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들이 청와대 이전이나 폐쇄를 요구한 바도 없고,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 그리 시급한 현안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 쪽에서는 국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고 권위주의 시대를 청산하기 위해서라 말하고 있지만 과연 집무실을 이전하는 것으로 이런 국정철학이 달성될지도 의문이고 또 업무의 효율성이나 유사시 외부세력에 대한 방어 등 여러 점을 고려하면 용산으로의 집무실 이전이 정말 합리적인 선택이었는지 아쉬움이 있다. 집무실 이전이 필요하다면 임기 중에 충분한 준비 과정을 거쳐 추진해도 될 일을 이렇게 무리하게 밀어붙인 것인지 의문이다.
전방위적 경제위기 퍼펙트 스톰 위험성 커
새정부, 더 시급한 에너지문제 등 집중해야
지금은 청와대 이전보다 더 긴급한 현안들이 많다. 고물가·인플레이션·경기침체 등 위기가 한꺼번에 휘몰아치는 전방위적 경제위기 이른바 퍼펙트 스톰의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왔던 정책 사업들의 부작용 때문이다. 원전 가동을 축소하면서 저탄소 정책을 공언한 모순된 상황을 넘어서기 위해 대안으로 천연가스 수입을 늘려 전기 생산 용량을 맞춰왔는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라 그간 누적된 한전의 적자 폭이 감당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른 것이다. 또 신재생 에너지 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그 효과는 아직 미미하다.
에너지·식량난·원자재 가격 상승에 인플레이션이 겹치고, 계속해 올릴 수밖에 없는 전기료와 가스요금을 감안하면 가계경제는 물론이고 물가상승의 폭이 매달 두자리 수로 뛰는 어려운 상황이 닥칠 수 있다. 여기에 금리가 오르고 환율이 약세를 보이게 되면 코로나19로 침체된 우리 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 새 정부 내각 구성이나 그간 인수위의 행보를 보면 퍼펙트 스톰에 대한 대비가 보이지 않는다. 이 판국에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아쉬운 결정이었다. 집무실보다 더 시급한 식량·환율·에너지 등 경제문제에 더 집중해야 한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