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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오전 11시께 남동유수지에 설치된 포획틀에 너구리가 잡힌 모습. 2022.5.20 /한달수기자 dal@kyeongin.com

멸종위기종인 저어새(천연기념물 205-1호)가 서식하고 있는 인천 남동유수지에 또 너구리가 출몰하고 있다. 이 때문에 번식기를 맞은 저어새 둥지가 피해를 보고 있다.

22일 시민단체 저어새네트워크가 남동유수지 저어새 둥지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지난 18일까지 만들어진 저어새 둥지 210개 중 30여 개가 너구리에 의해 훼손됐다.

남동유수지 210둥지 중 30여개 훼손
승기천 서식… 하천 따라 이동 추정


너구리에 의해 피해를 본 저어새 둥지들은 남동유수지 2개 인공섬 가운데 작은 섬 울타리 바깥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저어새네트워크는 남동유수지 주변에 설치한 무인센서카메라에 녹화된 영상을 통해 너구리가 저어새 둥지를 헤집고 다니는 모습을 포착했다.

너구리 습격에 놀란 저어새들이 황급히 날아가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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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저녁 9시 35분께 남동유수지 저어새섬에 너구리(작은 원)가 침입한 모습. 2022.5.18 /인천시 제공

남동유수지 인근 승기천에 서식하는 너구리들이 하천을 따라 내려와 작은 섬까지 들어간 것으로 추정됐다.

둥지에 머무르면서 알을 품거나 새끼를 돌보던 저어새들은 갑작스러운 너구리의 습격에 둥지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관찰되고 있다고 저어새네트워크 관계자는 설명했다.

저어새 보호 활동가들은 저어새 둥지가 있는 인공섬에 너구리들이 침입하면서 저어새 번식률이 급감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저어새들은 3월 말부터 알을 낳고, 25일간 알을 품어 새끼를 부화한다. 지금은 저어새 새끼들이 부화해 둥지에서 어미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하는 시기다. 너구리 습격으로 저어새들이 번식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19년에도 비슷한 상황 발생
번식기 맞아 더 큰 피해 생길 우려도


2019년에도 너구리가 큰 섬을 습격해 70여 마리의 저어새 새끼 중 15마리만 살아남았다.

이러한 기억 때문에 저어새들은 이듬해 큰 섬에는 둥지를 틀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인천시와 국립생태원은 포획틀을 설치해 너구리 1마리를 붙잡는 한편, 저어새 보호를 위한 추가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국립생태원 멸종위기보호센터 권인기 조류팀장은 "승기천에서 흘러내려 온 흙이 남동유수지에 쌓인 탓에 수심이 얕아지면서 너구리가 헤엄을 쳐 인공섬에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주변에 다른 너구리들이 머물 가능성도 있어 포획틀을 설치해 상황을 지켜보고, 너구리가 철책 안쪽에도 침입했는지 확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달수기자 dal@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