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소가 터져나오는 영화 속 주양의 연기는 '아랫것'들을 향한 비웃음인 동시에 자아비판이기도 했다. 추한 상류층의 '열심히 사는 삶'이란 무엇인지 주양이 정말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장관 후보자 등 대한민국 상류층의 소식들을 보노라면 "증말 열심히들 산다"같은 영화 대사가 절로 떠오른다. 상위 1%인 그들이 수백만원의 소소한 장학금에는 왜 눈독을 들이고(정호영 후보자: 재산신고 62억4천만원), 얼마 된다고 위장전입까지 해가며 자동차 세금을 아끼는지(한동훈 장관 부인 진은정 변호사: 재산신고 38억8천만원) 참 억척스러운 부자들이다.
K-상류층이 온 힘을 다하는 종목에는 세습을 위한 자녀 교육이 빠질 수 없다. 전 정권에 큰 상처를 남긴 상류층 자녀의 비뚤어진 스펙 쌓기는 이번 정권에선 별나게도 대통령 부인부터 솔선수범(?)을 보였다. 자녀가 없는 김건희 여사는 표절의혹 논문은 물론이고, 그 이력의 태반을 과장과 허위로 채워넣었다.
'방석집' 사태 직후 사퇴한 김인철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교육 전문가답게 장학금 활용부터 남다르다. 풀브라이트재단의 장학금은 한미 양국 정부의 출연금에 기반하는 공적 성격의 민간 장학금인데, 김 후보자는 일가족 모두가 혜택을 받았다. 한 해 20~30명을 대상으로 연 5천만원에 육박하는 고액 장학금이 주어짐을 고려할 때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특히 김 후보자가 한국풀브라이트 동문회장을 맡았던 시기와 자녀 둘이 장학생으로 선발된 시기가 겹칠 뿐 아니라, 경희대 임모 교수는 동문회의 부회장으로 장학생 심사에 관여했다. 김 후보자 딸의 학과 교수였던 최모 이화여대 교수는 김 후보자가 동문회장이었을 때 장학프로그램에 선정되어 미국에 교환교수를 다녀왔고, 바로 그 직전에는 김 후보자의 아들이 장학생으로 선정될 때 심사위원을 맡았다.
풀브라이트 장학금으로 돈독하게 엮인 김 후보자 가족과 임모·최모 교수는 스펙과 취업에까지 연결된다. 임모 교수가 국회입법조사처장과 동문회 부회장을 역임할 때 김 후보자의 아들은 입법조사처에서 인턴 경력을 쌓았다. 또 최모 교수가 장학금 심사위원일 때는 그 밑에서 연구보조원 스펙을 적립했고, 몇 년 뒤에는 논문과 책을 공저한다. 풀브라이트의 혜택을 입은 교수들은 김 후보자 딸의 논문에도 공저자로 등록돼 있다. 어쩜 이리도 끼리끼리 밀어주고 당겨주는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님에도 감탄을 자아낸다. 지면상 거론하지 못하지만 정호영 후보자와 한동훈 장관의 일가도 수사가 필요할 만큼 기득권 세습을 위한 노력이 가상하여, '증말' 열심히 사는 상류층으로 꼽지 않으면 서운하다.
볼썽사나운 세습 상류층의 중용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퇴행하는 정책이다. 예컨대, 대학교육과 무관한 저임금 일자리의 맞벌이 부부를 생각해보자. 세상에는 서민에 불과한 이들이 주당 평균 35시간 일을 하며 육아와 가사를 함께하고 소소한 여가를 즐기며 사는 나라도 있다. 사람값을 후려치지 않는 고비용 구조를 만든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전 계층의 온건한 격차를 바탕으로 부모 자식간 계급의 동질성이 약화될 뿐 아니라 불가피하게 벌어지는 세습의 폐해까지 대폭 완화된다. 서둘러 가야 할 한국의 지향점에 다름 없다. 앞선 나라들은 벌써 수십년 전에 통상의 실노동시간이 주 40시간에 미달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주 52시간 이상으로 노동시간을 늘리고 임금은 낮추려 하며, 격차 축소의 핵심 고리인 일과 가정의 성평등에 대해서는 적대적인 모습마저 보인다. 뒤처진 구조개혁의 과제를 풀기는커녕 과거의 후진적인 사회구조로 돌진하는 것이다. 세습과 퇴행에 열정적인 새 정부를 보며 마음이 답답한 것은 우리 사회에 대해 너무 과욕을 가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장제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