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30년전 수원야구장에서 야구공을 잡은 꼬마'였다. 유신고 출신이지만 그가 프로에 입문할 때 수원kt위즈는 없었다. 현대유니콘스에서 프로선수를 시작했다. 히어로즈에서 FA자격을 얻은 후, 고향의 신생팀에 합류했다.
유한준은 노력형 선수다. 후보로 출발했지만 꾸준한 노력으로 주전 자리를 확보했다. 에이징 커브(나이듦에 따라 기량이 쇠퇴하는 현상)가 무색했다. KBO 40년 역사에 1천500경기 이상 출전한 타자는 57명에 불과하다(2021년말 기준). 유한준은 역대(歷代) 51번째 선수다. 기록 달성 당시 만 39세로 최고령이었다. 최연소인 장성호 선수의 만 30세와는 거의 10년 차이가 난다. 뒤늦게 성공한 셈이다.
노력형 선수 수원kt 유한준 은퇴식
팬·후배·구단 모두 위한 중요한 행사
개인의 노력이 없다면 이러한 성과는 불가능하다. 동시에 소속팀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고향의 신생팀은 그에게 행운이었다. 선수층이 두터운 기존 구단은 고참과 후배들의 주전 경쟁이 치열하다. 상대적으로 출전기회 확보가 쉽지 않다. 히어로즈에서 FA가 된 것도 행운이다. 히어로즈는 포스팅 시스템(높은 금액을 제시한 팀에게 선수를 양도하는 제도)으로 선수를 메이저리그에 보냈다. 타 구단과는 현금 트레이드를 실시했다. 주전 기회가 왔고, 준비되어 있는 유한준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 온다'는 격언과 들어맞는다. 유한준의 전성기는 30대에 시작되었다. 2015년 히어로즈 소속으로 타율 2위(0.362), 최다안타(188), 최다2루타(42)로 커리어 하이를 달성했다. 작년에는 고향팀에서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출전 횟수는 줄었지만 3할대 타율은 여전했고(0.309) 승부처에서 베테랑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켰다. 수원kt위즈는 페넌트 레이스와 코리안시리즈를 석권한 통합챔피언이 되었다. 선수단의 핵심에 그가 있었다.
우승 직후, 그는 은퇴를 선언하여 '박수칠 때 떠나라'는 교훈을 실천했다. 선수들은 모두 현역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감독은 베테랑이 단기 승리에 도움되지만, 기량이 쇠퇴하면 주전에서 배제하기 어려운 딜레마가 있다. 단장은 성적과 신인 육성을 동시에 달성해야 하고, 선수단 전체 연봉도 고민해야 한다. 팬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스타의 은퇴를 당장에는 섭섭하게 여긴다. 하지만 팬들의 기억에는 영원한 스타로 남게 된다.
그는 최고 기록 달성하지 못했지만
좌절·포기않고 꾸준히 도전했기에
프로세계에서 끝까지 살아 남았다
성적만이 명문구단의 조건이 아니다. 경기장, 선수단, 팬 등 모든 요소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수원야구장은 프로팀 유치와 함께 최신 시설로 리모델링 되었다. 30년 전 수원야구장 화장실은 시골 버스대합실 수준이었다. 칸막이 없는 철판소변기에서 여러 사람이 동시에 볼 일을 보고,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렸다. 이제는 아득한 옛 추억이다.
선수들은 가장 중요한 상품이다. 최선의 노력으로 최고 기량을 보여줘야 한다. 감독은 지략을 총동원해 전술을 구사하고 매 게임의 승부와 한 시즌을 운용해야 한다. 구단은 선수들의 성취동기를 유도해야 한다. 모두가 야구단의 존재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돈이 전부가 아니다. 팀, 팬 그리고 경기 외의 모든 면에서 모범인 선수들이 퇴장할 때는 그에 상응한 대접이 필요하다. 은퇴식은 팬만이 아니라 후배 선수, 구단 모두를 위한 중요한 행사다.
팬들의 수준도 중요하다. 유한준 선수는 몸 관리를 위해 술과 탄산음료를 삼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팬클럽에서는 음료 트럭을 제공했다. 은퇴하였으니 이제는 콜라를 마음껏 마시라는 의미이다. 이 정도면 수준 높은 팬이라 할 수 있다.
유한준 본인의 말처럼 그는 최고의 '기록'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꾸준하게 노력한 선수였다. 좌절,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했다. 프로의 세계에서 끝까지 살아남았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은퇴하는 선수가 되었다. 하늘에는 불꽃놀이가 펼쳐지는 가운데 모두의 박수를 받으면서 경기장을 떠나는 선수가 되었다.
/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