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심사에서 박지현을 '추적단 불꽃'이라는 익명으로 만났다. '추적단 불꽃'은 2019년 탐사보도 공모전에 참가하려던 두 여대생이 결성한 아마추어 기자단이다. 텔레그램에서 대어를 낚았다. 성착취물을 공유하는 단체 채팅방에 잠입해 악마들의 실체를 추적했다. 언론사들과 협업해 'n번방'의 실체를 세상에 알렸다. 심사위원들은 만장일치로 '특별상'을 결정했다.
추적단 불꽃의 '불'이 2022년 박지현이라는 실명을 밝히고 민주당 이재명 대선 캠프에 합류했다. 디지털 성범죄 방지에 일조하겠다는 명분은 또렷했다. 이재명은 졌고 박지현은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됐다. 20대 박지현은 민주당 쇄신의 상징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박지현이 지난 24일 국민에게 오랫동안 깊게 허리숙여 사죄했다. 지지율 급락으로 6·1 지방선거가 위태롭자 결행한 대국민 사과였다. '내로남불의 오명을 벗겠다'고 했다. '팬덤정당이 아니라 대중정당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86세대 용퇴도 주장했다. 그녀의 사과에 이재명 총괄선대위원장, 윤호중 공동비상대책위원장과 당내 중진들이 함께 했다면, 민주당은 박지현을 잔다르크로 만들 수 있었다.
잔다르크는 하나님의 계시로 100년 전쟁에 뛰어들어 샤를 7세에게 왕관을 씌워주고 조국 프랑스를 구했다. 샤를 7세는 잔다르크의 잠재적 권력을 시기해 그녀를 배신했다. 잔다르크는 이단재판의 판결로 화형됐다.
박지현은 민주당의 잔다르크가 되기도 전에 당내 여론재판대에 섰다. 그녀의 사과를 '개인적인 의견'으로 폄하한 윤호중은 다음날 박지현 앞에서 "지도부의 자질이 없다"며 책상을 치고 퇴장했단다. 처럼회 김용민 의원은 "사과로 선거를 이기지 못한다"고 꾸짖었다. 이재명의 '개딸'들은 내부총질하는 적으로 낙인 찍었다. 당내 성폭력 사건에 단호한 박지현을 여성 당원들이 막아선다. 586의 아름다운 퇴장을 호소하는 박지현을 586 중진들이 모욕한다. 선거가 잘못되면 박지현은 심판대에 올라야 한다. 선거 결과가 좋다면 이재명 덕이 될 것이다.
n번방의 절대악을 끝까지 추적해 처단한 20대 박지현의 정의와 용기와 투지가 유구한 역사의 민주정당에서 빛을 잃고 있다. n번방 만큼이나 지옥 같은 정치권이다. 박지현의 실패는 민주당과 우리 정치의 실패이다. 박지현의 진심을 응원한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