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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정치부 차장
요즘 음식점들은 '조리과정'을 공개한다. 손님에겐 보이지 않는 주방공간에 CCTV를 달아 주방장이 조리하는 과정을 공개하는 것이다. 꼭 CCTV를 달지 않더라도, 조리과정을 영상으로 촬영하거나 일일이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코로나19로 배달음식점, 밀키트 등이 성황을 이루며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2년 전 만해도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일부 음식점 등에 시범사업으로 운영한 게 다였지만, 지금은 음식업체들 스스로 조리과정을 공개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만든 음식은 믿고 먹어도 된다'는 신뢰를 파는 것이다.

예전 우리 사회 같으면 "뭘 그렇게까지 호들갑이냐" 싶겠지만, 지금의 우리는 그들이 파는 신뢰에 대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한다. 그만큼 우리 일상에서 신뢰를 주고받는 일이 무척이나 중요한 가치가 됐다는 반증이다.

지방선거의 열기가 절정에 치달은 요즘이다. 내가 사는 지역의 일꾼을 뽑는 일이기에 흔히들 지방선거를 지방자치의 축제라 부른다. 이렇게 설레고 즐거운 때에, 지방자치의 신뢰를 깨는 '촌극'이 벌어졌다. 그것도 인구 약 50만의 북부 최대도시인 의정부에서 말이다. 12년간 의정부를 이끌며 이제 아름다운 퇴장으로 빛날 줄 알았던 안병용 시장이 돌연 의정부 부시장을 직위해제했다. 사유는 '지시 불이행'. 시장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으니, 부시장의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어떤 지시일까 살펴봤더니 개발사업 관련 특혜 의혹을 받아 감사원으로부터 해임징계를 요구받은 A 과장의 승진을 지시했고 부시장은 지방공무원임용령을 근거로 '불법지시'를 거부했다. 며칠간 실랑이 끝에 결국 직위해제는 취소됐는데, 그 과정조차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지방자치 역사가 벌써 30년이 넘었는데 이 희대의 사건은 시대를 역행해도 한참을 역행했다.

모두의 신뢰를 사기 위해 평범한 이들도 내밀한 양심까지 끄집어내 증명하는 세상이다. 세상이 달라졌다. 정치는 더더욱 달라져야 한다.

/공지영 정치부 차장 jy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