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여 회장

"창간호를 그냥 박물관 서고에 가둬둘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창간호는 문화와 유행이 어떻게 변해왔고 또 변해갈 것인지 보여주는 세상의 '바로미터'이자 정신적 보물이기 때문입니다."

가천박물관과 가천문화재단 설립자인 이길여(사진) 가천길재단 회장은 이번 학술대회와 도록 출간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가천문화재단과 한국출판학회가 가천박물관 소장 창간호를 토대로 진행한 여러 연구자의 연구 결과를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공개한 것도, 최근 박물관 소장 364점을 엄선해 이를 도록으로 발간한 일도 이 회장이 평소 이 같은 고민을 해오지 않았다면 모두 없었을 일이다.

이길여 회장은 이 같은 성과에 대해 "좀 더 많은 분이 창간호 의미를 알고 이를 읽고 느끼고 향유한다면 결국 우리 문화의 '볼륨'도 더 커지고 깊어질 것이라 기대해 시도한 일"이라며 "창간호는 우리 사회의 발자취를 담은 콘텐츠의 항아리라고 할 수 있는데 이번에 비로소 그 항아리의 뚜껑을 열어 보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발행인 땀과 눈물로 만든 창간호
사회 발자취 담은 콘텐츠 항아리
이제야 비로소 뚜껑 열어보인 것


이 회장은 박물관을 만들기 훨씬 이전부터 창간호를 모아왔다. 이는 어린 시절 동학운동에 관여한 할아버님의 영향이 큰데, 이 회장은 기록의 가치와 우리 전통문화의 소중함을 조부로부터 체득했다고 한다.

이 회장이 창간호를 모은 것은 단순히 수집벽 때문이 아니다. 더 많은 이와 그 소중한 가치를 공유하고 싶어 모았다는 것이 정확한 이유다.

"잡지는 당대의 사상과 가치관, 유행 등 모든 것들이 담겨 있어요. 특히 한반도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가 심했던 근현대 100년을 정확히 투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잡지가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있어요. 중요한 문화상품인 잡지가 송두리째 사라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다 모을 수는 없어도 창간호만이라도 물려주자. 선인들이 무엇을 고뇌하고 관심을 가졌는지, 후대가 알게끔 해주자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이길여 회장은 '창간호' 의미에 대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그는 한국여자의사회 회장으로 일하며 발행인으로 '여의회보'를 창간했고, 길병원을 운영하면서는 철원, 양평 등에 병원을 열 때마다 '길병원보'를 만들었다.

이 회장은 "잡지를 창간한다는 것은 발행인의 땀과 노력, 눈물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창간호에는 그 생각이 그대로 담겨있다"며 "잡지를 만들 때의 마음은 내가 산부인과 의사로 생명을 탄생시킬 때의 그것과 비슷하다. 생명의 탄생과도 같은 인고의 과정이 필요한 일이 바로 창간호를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이 회장이 창간호를 비롯해 가천문화재단과 가천박물관에 노력을 쏟는 이유는 '문화'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새가 두 날개로 날듯이 물질적 풍요와 문화적 성숙은 함께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가 지난 50년 동안의 노력에 힘입어 경제대국이 되었지만, 그에 상응하는 문화적 수준을 갖추지 못한다면 졸부의 나라로 손가락질받을 것입니다. 국격을 높이고 세상 모든 이가 향유하는 공공재를 후대에 남기는 것이 나의 꿈이자 에너지입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