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지원금을 전부 줄테니 애들을 대신 맡아 달라고 자주 말씀하셨어요."

지난 3일 오후 11시께 안산시 상록구의 한 장례식장. 같은 날 오후 3시께 반월호수공원 인근 창고에서 숨진 채 발견된 A(64)씨의 빈소에서 그의 가족을 만났다.

A씨는 생전 20대 후반 발달장애인 형제를 홀로 키운 한부모가정의 가장이었다. 두 아들이 어릴 때 아내와 이혼을 한 A씨는 한평생 발달장애가 있는 형제를 혼자 돌봤다고 한다.

그는 중증 발달장애가 있던 아들의 대소변을 직접 처리해야 할 만큼 고된 돌봄을 오랜 기간 감당했다. 그럼에도 A씨는 자기 품에서 두 아들을 키워야 한다고 여겨, 시설 입소 등은 고려하지 않았다.

이런 그는 평소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형제를 돌보는 데 뒤따르는 여러 어려움을 하소연했다고 한다.

A씨와 자주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조카 B씨는 "힘들다는 이야기는 통화를 할 때마다 했다. 애들 앞으로 나오는 수당 등 지원금을 줄테니 동생들 좀 돌봐달라고도 종종 이야기했다"면서 "처음에는 농담인줄 알았는데, 자주 이런 이야기를 해서 삼촌(A씨)이 많이 힘들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A씨 가족은 그가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했다. A씨는 두 아들을 직접 돌보느라 따로 경제 활동을 할 여유가 부족했다. 지인의 논에 소규모로 농사를 짓는 정도였다고 한다.

B씨는 "최근 삼촌이 음주 교통사고를 내고 사건 처리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면서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이런 일들까지 겹쳐 크게 좌절한 것 같다"고 짐작했다.

경제활동할 여유 없어 버거워 해
설상가상 음주 교통사고에 연루
반월호수공원 인근 숨진 채 발견


A씨 가정을 도우며 그와 인연을 맺은 지인들도 B씨와 비슷한 기억을 꺼냈다.

8년 전쯤 A씨를 알게 된 사회적협동조합 '함께꿈꾸는세상' 문순덕 이사장은 "평상시에 A씨와 발달장애인 형제가 먹을 반찬을 전달했다. 집에 방문할 때마다 A씨는 돌봄에 대한 버거움과 우울감을 토로했다"면서 "매달 1만원의 회비를 받는데, 생활이 힘들어 보여 A씨에겐 이 돈도 받지 않았다"고 했다.

문 이사장은 이어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조금 더 나아질거란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데, 이런 죽음이 계속돼 굉장히 안타깝다. 이들 가정에 사회적 지원이 충분한지 돌아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인천·서울·수원·시흥 등에서도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가 처지를 비관해 비극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이 잇따라 벌어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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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청 앞에서 경기장애인 부모연대 주최로 열린 '가족에게 죽임을 당한 두 명의 발달 장애인에 대한 추모제'에서 참석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2022.3.8 /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

한편 경찰은 지난 2일 오후 A씨 가정을 돕던 생활지원사로부터 "A씨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내용의 신고를 접수하고, 이튿날까지 수색 작업을 벌인 끝에 반월호수공원 인근 창고에서 이미 숨진 상태인 A씨를 발견했다.

경찰은 이동 동선 CC(폐쇄회로)TV 등을 확인해 타살 혐의점이 없다고 판단, A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A씨가 음주 관련 교통사고에 연루되는 등 좋지 않은 일이 겹치면서 힘들어했다는 주변 진술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