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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1980년대 공고생들은 T자와 세공용 줄이 필수품이었다. 줄은 재질이 쇠이고, 표면에 많은 절삭 날이 갈려 때로 치명적인 무기로 변했다. 크기도 30㎝ 정도로 작아 책가방에 넣기 편했다. 학생들이 싸울 때 흉기로 쓰이는 사례가 많아 악명이 높았다.

1990년대 측정기기의 일종인 버니어 캘리퍼스가 일반화됐다. 길이나 높이, 너비 등 기계류나 사람의 신체 부위 치수를 1/20㎜까지 정밀하게 측정한다. 어미자(주척)와 아들자(부척)로 나뉘며, 아들자가 앞뒤로 움직여 길이·너비·높이를 재는 방식이다. 대부분 스테인리스 재질로, 종류에 따라 다르나 최대 300㎜까지 계측할 수 있다. 공학도들 필수품이다.

버니어 캘리퍼스가 31년째 장기미제인 '개구리 소년 실종·암매장 사건'의 범행 도구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1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나는 개구리 소년 사건의 흉기를 알고 있다'란 글에서다. 작성자는 "지난 2011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피해자 두개골 손상 흔적을 본 순간 범행 도구가 버니어 캘리퍼스임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손상된 모양과 크기가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글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실종 당시 올챙이나 도롱뇽을 잡으러 가다 환각물질(본드)에 중독된 불량 청소년들을 만나 살해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버니어 캘리퍼스는 공고 학생들이 많이 들고 다니는데, 당시 숨진 소년들이 발견된 와룡산 인근에 공고가 있었다는 거다. 우연히 마주치게 된, 지금은 일진이라 불리는 중·고생들의 우발적 범행일 가능성이 높다는 추론이다.

글 조회 수가 100만회를 넘으면서 논쟁이 격화한다. '캘리퍼스 강도(强度)로는 두개골을 깰 수 없다'는 의견에 '사람 몇은 충분히 보낼 수 있다'는 반론과 재반박이 뒤엉킨다. 대구 지역 근무 당시 비슷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는 네티즌은 "진실 규명을 위한 재수사가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구리 소년 사건을 담당했던 전직 경찰은 지난달 타살이 아닌 사고사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비를 맞고 저체온증으로 변을 당했다는 것이나 공감대가 좁다. 공소시효는 지났으나 경찰은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초등생 5명이 개구리 잡겠다고 집을 나섰다 돌아오지 못했다. 버니어 캘리퍼스가 그날의 진실에 다가설 단초(端初)일 수 있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