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과 지방선거가 끝났다. 앞으로 2년 가까이 전국 규모의 선거가 없다. 선거를 의식하지 않으면 정치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소신껏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여야 정당이 당내 권력투쟁에 매몰되어 오만해지고 독선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도 반성하지 않고 독단과 진영에 갇혔던 더불어민주당의 지방선거 패배를 보면 선거가 있다고 민심에 조응하는 것도 아니다.
제8회 지방선거가 국민의힘의 완승이라고 하지만 정권 출범 3주만에 치러진 탓에 여권은 평가를 받을만한 이렇다 할 대상도 없었다. 민주당이 대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대선 패장 당사자와 당 대표가 출마하고 대선 직후 성찰과 쇄신을 뒤로 한 채 검수완박의 무리한 추진 등 민심과 동떨어진 행보를 보인 데 대한 민주당 지지층의 투표 포기 때문에 승리한 것이다. 오죽하면 민주당의 아성이자 전략적 투표 성향과 정치관여도가 높은 광주에서 37.7%라는 역대 최저 투표율이 나왔을까.
여야 혁신위, 의제 삼을 개혁메뉴 차고 넘쳐
논쟁속 계파 형성땐 갈등 마다할 이유 없어
원론적이지만 선거의 존재이유는 민생과 경제를 위해서다. 여기에 정치공학과 각종 이슈, 구도와 바람, 인물 등의 요소가 복잡다기하게 얽히면서 선거라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구성된다.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수단으로서의 선거 본연의 의미가 상실된 채 정치공학과 정치인들의 탐욕이 목적이 되어버린 목적과 수단의 도치가 정치의 현주소다. 민에 의한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정의가 공허하지만 최소한의 정치명분과 이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선거는 정치를 업으로 하는 정치꾼들의 마당놀이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지금의 한국정치가 처한 현실이다.
국민의힘은 혁신위원회를, 민주당 역시 혁신비대위를 출범시킨다. 선거에서 승리한 여당이 혁신위를 꾸리는 게 이례적이지만 차기 당권을 의식한 공천제도 등 당내 선거공학적 요소가 짙다고 할 수 있다. 민주당의 혁신비대위가 민생과 국민의 삶과 관련된 정책을 둘러싼 노선 투쟁의 성격을 띠고 내부에서 토론과 갈등이 발생한다면 이는 명분에 부합한다. 그러나 지금의 민주당 내부의 갈등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정치가 세력 간의 투쟁이고 권력정치의 측면에서 내 편과 상대를 가르는 적과 동지의 구별이라는 작업이지만 가치지향과 명분 없이 현실정치의 외피만 가지고 권력투쟁을 합리화할 수는 없다.
당권 줄서면 공천 수월 악순환 정치 퇴행만
승리는 정치본령 다가서는 정당 것임을 몰라
여야의 혁신위가 의제로 삼을 개혁 메뉴는 차고 넘친다. 그러나 정치개혁과 국회개혁, 한국사회가 처한 구조적 모순과 경제를 위한 어젠다 중심의 논의가 주된 메뉴가 될 가능성은 낮다. 국회의원의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의 폐지 또는 완화를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의 문제, 인사청문제도의 개선, 선거제도의 개편 등 정치를 바꿀 수 있는 주제들을 다루면서 이에 대한 당내 논쟁을 바탕으로 노선 투쟁이 이루어지고 이를 중심으로 계파가 형성된다면 계파갈등은 마다할 이유가 없다.
차기 당권에 줄을 서야 공천이 수월해지는 정치현실이 항상 정치의 본령을 잊게 하는 주범이다. 당권을 잡아야 공천으로 자파세력을 확보하여 대선 후보를 따내고, 이에 줄을 잘 서야 공천이 수월해지는 악순환의 정치 구조가 한국정치를 마냥 퇴행적 정치에 머물게 한다. 이 구조를 근원적으로 뜯어고치지 않으면 어떠한 정치개혁도 성공할 수 없다.
그리고 여야 정당은 상대 정당의 패배의 경로를 잘 관찰해야 한다. 국민의힘의 2016년 이후의 4연패의 경로, 민주당이 지난해 4·7 재보선 이후의 3연패 등 한국정당들은 상대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한다. 승리는 정치의 본령에 다가서는 정당의 것임을 정치집단만 모른다.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