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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수업 종이 울리자 학생들은 노트나 파일을 하나씩 끼고 복도로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학생들이 향하는 곳은 학교 밖이 아니라 또 다른 교실이다. 교과교실제가 운영되는 인천여자고등학교의 쉬는 시간 풍경이다.

인천여고 학생들은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똑같은 교실과 책상에서 수업을 받지 않는다. 영어 수업은 영어 교실로, 사회 수업은 사회 교실로 학생들이 이동하면서 수업을 듣고 있다.

2019년 고교학점제 선도학교 지정·운영
내년 순차 도입, 교과교실제 뒷받침 필요


지난 2일 인천 연수구에 있는 인천여고를 찾아가봤다. 이날 3교시 인천여고 '잉글리시 존'에서는 3학년 영어 교과 중 하나인 영어권 문화 수업이 진행 중이었다. 수업을 듣고 있던 20여명의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둠을 이뤄 영어로 된 책을 읽고 있었다. 교실에 있는 학생들은 영어권 문화 수업을 선택한 2개 반 아이들이다. 같은 반 나머지 학생들은 다른 교실에서 영어 관련 수업을 듣고 있었다.

수능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 교실의 영어 수업이었지만, 학생들의 눈에는 활기가 넘쳤다. 교실에 비치된 노트북으로 모르는 단어를 검색해 보고,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인 부분이나 논의해야 할 주제를 적어 수업에 사용되는 애플리케이션에 올렸다.

이 과목을 담당하는 유승아 영어교사는 학생들이 올린 글을 보고, 게시글 밑에 관련된 설명을 달아주고 있다.

유승아 교사는 "올해 처음으로 이러한 형태의 수업을 시작했는데, 엎드려서 조는 아이들 없이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며 "수능을 봐야 하는 고등학교 3학년 애들을 대상으로 원서를 읽는 수업을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아이들이 영어를 조금 더 편안하게 대할 기회를 만들어 줄 수 있어 긍정적인 부분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수업을 듣던 신한서 학생은 "교실에서 틀에 박힌 수업을 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 같다"며 "책에 관련해서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수업 분위기도 좋아졌다"고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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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아트코리아

인천여고 엄은숙 연구부장은 "대학교 수업을 생각하면 된다"며 "학급 교실이 있고 교사들이 수업시간마다 교실을 이동하는 게 아니라 과목에 알맞은 교실로 학생들이 이동하며 수업을 듣는 것"이라고 교과교실제에 대해 설명했다.

인천여고는 2019년 고교학점제 선도학교로 지정돼 운영되고 있다. 고교학점제는 대학처럼 학생이 직접 들을 과목을 고른 뒤, 해당 과목에서 배운 학업성취도 기준을 넘으면 학점을 취득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학생이 스스로 다양한 진로에 맞게 수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로, 내년부터 순서대로 도입된다.

고교학점제를 제대로 운영하려면 교과교실제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게 엄은숙 연구부장의 설명이다. 아이들이 듣고 싶어하는 다양한 수업을 개설하려면 지금처럼 같은 형태의 교실에선 수업이 어렵기 때문이다.

15억 들여 작년 교실·과학실 등 리모델링
도서관 2배 이상 넓혀 자료찾기 활용 UP
"넓은 교실 자유롭게 진행… 창의 인재 육성"


인천여고는 지난해 말 15억원의 예산을 들여 현재 사용하지 않는 면학실이나 가사실 등을 새로운 교실로 바꾸고, 과학실과 도서관 등도 리모델링했다.

교과교실은 교사의 의견을 수렴해 각 교과의 특성에 맞게 꾸몄다. 사회 교실에는 학생들이 토론할 수 있도록 별도의 공간을 만들었다. 멀티미디어 자료를 활용할 수 있는 모니터와 노트북은 물론이고, 사전과 관련 교재 같은 자료들도 언제든 꺼내 쓸 수 있게 갖췄다.

리모델링 과정에서 가장 많이 바뀐 공간은 도서관이라고 한다. 인천여고는 도서관을 2배 이상 넓혀 아이들이 이곳에서 수업을 받고, 평소에도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이날 도서관 옆 회의실에서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창의적 체험 활동 진로 수업을 듣고 있었다. 이 수업에서 학생들은 우리 생활 속에서 불편한 부분을 조사해 발표하고, 해결 방안을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학생들이 조사하는 과정에서 원하는 자료가 있으면 옆에 있는 도서관에서 바로 찾아 발표에 반영했다고 한다.

전채민 학생은 "평소에는 지나칠 수 있었던 우리 생활에서 불편한 부분에 대해 친구들과 함께 조사하고, 해결 방안을 생각할 수 있어 좋았다"며 "넓은 교실에서 친구들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모든 아이가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것 같다"고 했다.

교과교실제를 운영하는 가장 큰 취지는 학생 중심 교육과정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비슷한 교실에서 교사가 한 방향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수업이 아닌 교과교실에 갖춰진 수업자료를 활용한 활동 중심 수업이 활발하게 운영된다.

또 교과교실제에 맞춰 새롭게 꾸며진 교실이 많아지면서 학생들이 스스로 도서관 등 학교에 남아 공부를 할 정도로 학교 분위기도 좋아졌다고 학교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권조환 교감은 "과거에는 학교가 딱딱한 분위기였다면 이제는 아이들이 자연스레 공부도 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이 많다 보니 (학교가) 오래 머물고 싶어하는 장소로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권 교감은 "기존의 교육과정은 제한된 측면이 많았다면 고교학점제 등 새로운 과정들은 아이들에게 자유로움과 창의성을 보장해주는 것"이라며 "교과교실제는 이러한 수업을 진행하는 것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기반시설"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이 원하는 수업을 많이 만들어 창의적인 인재로 자라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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