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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어린 툇마루에/손 흔들던 어머니/길 떠나는 우리 아들 조심하거라/그 소리 아득하니 벌써 70년/보고 싶고 보고 싶은 우리 엄마여/재 넘어 길 떠나는 유랑 청춘아." 송해가 2015년 발표한 노래 '유랑청춘'이다. 24세 송복희는 1951년 1·4후퇴 때 어머니와 형제들과 생이별했다. 연평 앞바다를 건너며 바꾼 이름 송해(海)로 70년 넘게 대한민국 전역을 유랑했다.

영원한 유랑청춘 송해가 8일 9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송해 하면 '전국노래자랑'이다. 진행자와 프로그램이 한국 방송역사의 전설이다. 1988년부터 34년간 전국 시·군·구를 몇 바퀴나 순회했다. 일요일 오후 경쾌한 방송 시그널 음악과 함께 "전국~ 노래자랑"이라는 시보가 울리면 전국의 시청자들이 송해 앞에 모였다. 60갑자를 넘겨 시간이 갈수록 품이 넓어지는 노장의 푸근한 진행 솜씨에 참가자들은 '땡'에도 당당했고 '딩동댕'엔 환호했고, 시청자들은 맘껏 웃으며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국민과 함께 세월을 공유한 전국구 스타, 바로 송해다.

지난해 개봉한 다큐영화 '송해 1927'을 뒤늦게 유튜브로 시청했다. 연예계와 방송역사에서 화려한 업적을 쌓은 '딴따라 송해'의 이면에 회한과 후회에 잠긴 '인간 송해'가 있었다. 고향과 부모형제를 잃고, 자식을 앞세우고, 아내를 떠나보내며 한세기를 살아온 사람이 감당해 온 희로애락이 묵직했다. 그의 반대로 연예계 진출을 포기했던 아들이 생전에 남긴 자작곡 녹음을 처음 듣고 착잡한 표정을 지을 땐 절로 울컥했다.

송해는 고향 땅 황해도 재령에서 '전국노래자랑' 무대를 펼치는 것이 생전 소원이라 했다. 2003년엔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로 북한에서 '평양노래자랑'을 진행했으니, 헛된 꿈만은 아니라 믿었을 테다. 하지만 결국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영원한 딴따라 송해에겐 무대가 생명이었을 테다. 코로나19로 전국노래자랑은 2년간 현장녹화를 중단했다. 무대와 관객을 잃어버린 상실감이 나이만큼 컸을 테다. 지난 3월엔 코로나로 입원도 했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이번 일요일도 "전국~ 노래자랑" 시보가 어김없이 울렸을 거라 상상하니 더욱 아쉽고 서운하다. 격동의 세기를 살면서 국민을 위로해 준 예인의 생애에 경의를 표한다. 지금쯤 어머니 두고 넘던 재, 거꾸로 넘어 고향 땅 디뎠길 바란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