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생수통은 드럼이 되고, 망가진 주차 고깔은 실로폰과 같은 타악기가 됐다. 시민 연주자가 하프처럼 연결된 하수구 배관을 긁으니 독특한 소리가 났다. 평범한 시민들이 모여 폐품을 활용한 업사이클링 악기를 연주하고, 피에로 분장을 한 연기자들이 환경을 이야기하자 객석은 박수와 환호로 화답했다.
제21회 의정부음악극축제가 시민 정크오케스트라와 국내 1호 환경퍼포먼스 그룹 '유상통프로젝트'의 무대를 시작으로 막을 올렸다.
지난 11일 오후 의정부예술의전당 야외무대에서 열린 개막공연은 이번 축제의 테마, 지구와 환경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무대였다. 5살 어린이와 가족, 은퇴한 중장년층과 다문화가족 등 평범한 시민 50명으로 구성된 '시민 정크오케스트라'는 버려진 플라스틱 등으로 만든 오브제 악기를 흔들거나 두드리며 음악을 만들었고, 여기에 '유상통프로젝트' 연기자들은 관객과 소통하며 환경을 주제로 한 메시지를 던졌다. 팬터마임, 탭댄스, 랩과 묘기 등을 아우르는 종합 예술에 관객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친구, 가족들과 축제를 찾은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호응하며 공연을 즐겼다. 이날 야외공연장에는 시민 2천여 명이 운집해 객석 의자는 물론 야외 공연장 계단과 주변을 가득 메웠다. 일부 시민은 미리 돗자리와 의자를 준비하는 열정을 보였다.
분위기가 고조된 가운데 등장한 성악가 폴포츠의 공연은 이날의 절정을 장식했다. 역경을 이겨낸 성공 스토리로 '기적의 사나이'라 불리는 폴포츠는 엄청난 성량과 감미로운 음색으로 야외공연장을 뒤흔들었다. 코리아모던필하모닉의 연주와 소프라노 한아름의 목소리도 공연의 매력을 더했다.
제2의 고향이라고 표현할 만큼 한국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는 폴포츠는 이날 능숙한 한국어 발음으로 관객에게 농담을 건네고, '그대 그리고 나', '그리운 금강산' 등 한국인에게 익숙한 곡들을 부르며 관객들과 소통했다.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 나오는 아리아 '축배의 노래'를 부를 때는 소주병을 들고 나와 축배를 드는 위트도 보였다. 관객들은 앙코르를 외치며 무대를 떠나는 폴포츠의 발길을 두 차례 붙잡았다.
아이와 함께 공연을 지켜본 김숙정(37)씨는 "의정부음악극축제를 통해 좀처럼 보기 힘든 수준 높은 공연을 봤다"며 "선선한 여름밤 날씨와 더불어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제21회 의정부음악극축제는 오는 18일까지 의정부예술의전당 야외무대와 아트캠프, 음악도서관 뮤직홀, 중랑천, 송산사지 근린공원 등에서 열린다. '거리로 나온 음악극, 지구를 노래하다'라는 주제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극 50작품과 업사이클링 아트 전시·체험 프로그램 등을 선보인다. 올해는 특히 지구와 환경 관련 이슈들을 다룬 작품이 다수 선정됐는데, 플라스틱 사용으로 인해 오염된 자연의 이야기를 춤과 그림자극으로 표현한 극단 즐겨찾기의 '빅웨이브'(18일 오후 3시, 5시 아트캠프), 기후 위기는 현재진행 중인 사건으로 그 심각성을 나무로 형상화한 이동형 퍼포먼스 초록소의 '함께 막거나, 다같이 죽거나'(18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야외광장) 등이 대표적이다.
의정부/김도란기자 dora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