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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은 영부인을 '남의 아내를 높여 이르는 말'로 새기고 있지만, 더 정확하게는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의 아내에 대한 경칭이다. 그런데 이젠 대통령의 아내를 영부인이라 부르니, 대통령 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의 아내의 호칭으로 애매해졌다. 대신 영부인은 존칭을 독점하는 대가를 혹독하게 치른다. 대통령과 함께 공인의 삶을 감당하며 공공의 이익에 헌신하는 의무가 그것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영부인 올레나 젤렌스키는 남편과 함께 러시아와 전쟁 중이다. 남편은 전선에서 전쟁을 지휘하고 영부인은 후방에서 국민을 위로하고 전세계 영부인들에게 지원을 호소한다. 자신을 '러시아 미사일에 당장 죽을 수 있는 우크라이나인들 중 하나일 뿐'이라며 조국 수호 전쟁의 중심에 당당하게 서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아내 질 바이든은 남편이 한·일 순방 외교를 펼칠 때, 남미 국가를 순방하면서 영부인 외교를 펼쳤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영부인 육영수는 남편 박정희가 '청와대 안의 야당'이라고 농을 건넬 정도로 민생에 관심이 많았다.

남편이 최고의 공인인 대통령이고 공식적인 의전을 지원받는 퍼스트 레이디 영부인의 가장 큰 고충은 사생활 유지가 거의 불가능한 점이다. 버락 오바마는 회고록 '약속의 땅'에서 자신이 미국 대통령이 된 탓에 영부인 미셸 오바마와 두 영애(대통령의 딸)가 평범한 일상을 잃게 된 점을 두고두고 미안해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 영부인 김건희 여사의 팬카페가 구설에 올랐다. 윤 대통령은 영부인 공식의전기관인 제2부속실 폐지를 공약했다. 국민이 뽑은 건 대통령이지 영부인이 아니지 않느냐는 논리지만, 대선 후보 부인들이 선거과정에서 난도질 당하자 덜컥 약속한 고육책에 가깝다.

후유증이 심각하다. 영부인의 일정이 담긴 사진과 메시지가 팬카페를 통해 중계된다. 팬카페 회장인 변호사는 이를 비판하는 시사평론가에게 쌍욕을 퍼부었다. 전 영부인 권양숙 여사를 예방한 자리에 개인적 지인을 동행시켜, 영부인의 통합 행보가 사적 행보로 격하됐다.

대통령과 영부인은 대한민국 최고위 공인이다. 말 한마디, 사진 한 장이 상징과 규범으로 공공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영부인 일정의 공식관리가 시급하다. 제2부속실 부활이 민망하면 인력지원은 필수다. 김건희 팬카페도 정리해야 할 테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