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는 진화합니다. 사회가 변하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변하면서 사람들 삶의 양태도 변하고 범죄도 보조를 맞춰 모습을 바꿉니다.
한국 역사에 처음 등장하는 형법인 고조선 8조법은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한다', '남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곡물로 배상한다',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노비로 삼되 용서를 받으려면 돈 50만 전을 내야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살인, 상해, 절도라는 범죄가 저 옛날 고조선에도 동일하게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수 천 년 세월이 지났지만 범죄의 내용은 동일한 것이죠. 이처럼 과거나 현재나 똑같은 범죄가 있는 반면 예전엔 없었던 범죄가 생기기도 합니다.
암호화폐 단점 극복한 새 코인 등장
돌려줘야할 수익 '새 투자자에 확보'
가령 최근 불거진 '코인사태'를 보죠. 비트코인을 필두로 최근 몇 년 동안 암호화폐 자산이 폭등하면서 우후죽순 새로운 코인들이 나타났습니다. 그 중 한국인이 개발한 'L코인'의 상승은 두드러졌습니다. 한때 시가총액 23조원으로 전 세계 암호화폐 시가총액 10위 안에 진입할 정도였죠.
암호화폐는 자산 변동성이 크다는 게 가장 큰 단점으로 꼽힙니다. 국가가 일정한 가치를 유지하려 애쓰는 일반 화폐와 달리 암호화폐는 일종의 투자 수단으로 취급받기 때문에 투자 상황에 따라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죠. 어제 100원이었던 암호화폐가 내일 10원이 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L코인은 이런 암호화폐의 단점을 극복한 새로운 방식으로 주목받았습니다. L코인의 가치를 자매 화폐인 T코인으로 유지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죠. T코인 가격을 전 세계 화폐의 기준(기축통화)이 되는 달러와 연동해 안정성(Stable)을 더한 것입니다.
T코인이 달러와 연동되니 안정성이 더해졌고, 이에 따라 L코인도 안정화되는 효과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이런 T코인을 '스테이블 코인'이라고 불렀습니다.
문제는 T코인과 달러가 어떻게 연동되는지 이 연동의 고리가 얼마나 견고한지 알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높은 수익률을 약속하고 투자자를 모집한 덕에 L코인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솟아 시총은 날로 늘었지만 어느 날 한 순간에 T·L코인의 가치가 바닥으로 추락합니다.
일부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이 투자금 회수가 줄을 이었고 결국 T·L코인의 가치는 휴지조각이 됩니다.
美 '피라미드 구조' 사기행각과 유사
'저리 대출' 보이스피싱도 계속 진화
이 과정에서 자주 거론되는 것이 '폰지사기'입니다. 19세기부터 20세기 사이 미국에서 활동한 찰스 폰지(Charles Ponzi)의 범죄에서 이름을 딴 사기 행각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의 사기 방법을 쉽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투자자에게 높은 수익률을 약속해 많은 투자자를 모으고 기존 투자자에게 줄 수익금은 새로운 투자자의 투자금으로 지급합니다. 그럼 높은 투자 수익에 혹한 투자자가 계속 몰리면서 피라미드 구조가 유지됩니다.
이른바 '다단계'의 원형인 셈이죠. T와 L코인 역시 이름만 달라졌을 뿐 폰지 사기와 본질이 같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암호화폐, 스테이블코인, 달러 연동과 같은 화려한 단어 속에 숨어 있던 것은 100년이 된 사기 방식이었다는 지적입니다.
T·L코인 사태에 사기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지 미지수입니다. 혐의를 입증해야 할 책임이 이제 수사기관의 몫으로 남았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보이스피싱은 휴대전화와 현금자동입출금(ATM)기기가 널리 보급된 2000년대 중반부터 나타났습니다. 휴대전화로 국가기관을 사칭하거나 지인·가족의 이름을 빌려 현금 송금을 요구하는 것이 보이스피싱 범죄의 패턴입니다. 요즘은 금융기관에 빚을 진 서민들에게 보이스피싱의 칼날이 겨눠지고 있습니다.
2년 동안 코로나19를 거치며 전 세계에 풀린 돈으로 물가가 상승하자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가 계속 오르고 있습니다. 금리 인상으로 부채에 대한 금리가 오르자 서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를 노려 당장 빚을 상환하면 낮은 이자로 다시 대출을 해주겠다는 범죄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처럼 범죄는 시대 상황과 흐름에 맞춰 진화합니다. 사기나 보이스피싱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은 변화하는 범죄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 그런 피해를 받지 않으려면 어떤 자세로 경계해야 할지 생각해봅시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