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령(러시아 영토) 임시정부' 설립에 앞장섰던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1860~1920) 선생이 순국 전까지 독립운동단체 '독립단' 단장으로 활약했으며, 그의 아들은 '고려혁명군' 특별사령관이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는 최재형 선생이 1920년 4월 독립단 단장으로 활동 중 일본군으로부터 조사받다가 탈출을 기도해 목숨을 잃은 것을 '일본 외무성기록'을 통해 확인했다고 19일 밝혔다.
인천대, 日 외무성 기록서 첫 확인
알려진 의병 후원중에 사망과 달라
연해주-간도 독립군 간 협조 '눈길'
최재형 선생이 연해주에서 안중근, 유인석, 이범윤 등 의병 후원 중 순국한 것으로 알려졌던 것과는 차이가 있다. 일본 외무성기록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경무총장·간도총영사가 내각총리와 외무대신에게 보고한 문서다.
일본 외무성기록에 따르면, 최재형 선생의 장남 최 코루리는 1922년 11월 고려혁명군 특별사령관을 맡았다. 고려혁명군은 1921년 중국 간도를 근거지로 삼아 항일투쟁을 전개했던 의군부를 중심으로 재편성된 항일독립단체로 당시 최 코루리는 기병 200명과 보병 1천명을 지휘했다고 전해진다.
최재형 선생과 그의 자손이 독립운동에 쏟았던 새로운 공적이 확인되면서 연해주 독립군과 간도 독립군 간 협조했던 대목도 눈에 띈다. 최재형 선생은 총 200정과 탄환 1만발을 구해 간도가 있는 지린성으로 반출하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그가 당시 독립단 소속 단원 7명에게 이를 공유했다는 내용이 문헌에 수록됐다.
인천대는 최근 교육출판전문기업 미래엔과 이 같은 내용의 '전국 주요 독립유공자 교육자료 연구' 중간 발표회를 했다. 인천대는 지난해 미래엔과 전국 시·도 교육지원청에 초·중·고 학생을 대상으로 한 독립운동가 학술연구자료를 만드는 업무협약을 맺었다.
최재형 선생은 일제강점기 연해주에 사는 한인의 생계와 교육을 지원하고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다. 정부는 최재형 선생이 순국한 지 42년 만인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인천시는 인천에 사는 최재형 선생의 4대손 최 일리야군이 수술이 필요하지만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지난해 지역 의료기관과 함께 수술비 등을 지원했다. 최 일리야군은 2019년 인천대의 제안으로 한국에서 공부하다가 올해 인천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