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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연극 '기후비상사태: 리허설'(전윤환 작·연출, 5월11일~6월5일, 명동예술극장)은 제목이 말하는 그대로 기후위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지구 사회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인 기후위기를 무대에 올리는 과정에서 이번 공연은 주목할 만한 성취를 보여주었다. 연극 제작과정에서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직접행동을 실천한 것이다. 단지 기후위기의 실태를 조사하거나 '기후위기비상행동' 그룹이 진행한 캠페인에 참여한 것을 희곡 창작과정에 반영한 정도가 아니다. 사전워크숍을 통해 활동가와 대기과학자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다. 나아가 연습과정과 연극 제작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줄이려는 여러 실천은 사회변화실험의 좋은 보기가 될 만하다.

공연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암전이다. 암전을 이 공연만큼 효과적으로 활용한 작품이 또 있었을까. 암전은 무대장치나 장면을 바꾸기 위해서 쓰인다. 그러니까 암전을 작품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장면 전환을 위해서 쓰이는 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에서 주목할 암전은 세 번 나온다. 공연의 처음, 중간 그리고 끝에 나오는 세 번의 암전은 그 지속 시간을 놀라울 정도로 길게 연출하였다. 다분히 의도한 연출이라는 점을 관객이 알아차리도록 한 것이다. 오퍼레이터의 조작 미숙이 아니라 의도한 연출이라는 사실을 관객이 눈치채야만 극적 효과를 배가할 수 있기에. 


연극 '기후비상사태: 리허설'은
지금의 성장은 지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해


정전을 경험한 적이 있는 사람과 정전을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이 한 극장에 있었다면 아마도 그 둘의 극적 체험이 조금 다르지 않았을까. 대부분 후자가 아닐까. 볕이 좋은 날 한두 개라도 전등을 끄고 수업을 하는 선생님을 만난 적이 없는 쪽이거나 정전으로 밝혀둔 초가 녹아내리면서 불로 번진 집을 본 적은 더욱 없는 편일 것이다. 옆에 앉은 사람과 말할 수도 없는 극장에서 만들어진 긴 암전의 시간에 관객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루 내내 밝혀둔 전등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긴 암전의 시간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극장에서 맞이하는 암전이니 길더라도 안심하고 조명이 밝혀지기를 그저 기다렸을까, 아니면 그 긴 암전의 시간 동안 잠시라도 하나뿐인 지구가 맞이한 위기의 장면을 떠올렸을까.

암전이 극장이 아닌 현실에서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모두가 그 충격적 결말을 예상하고는 있으나 그 결말을 피하기 위한 실천에 모두가 나서지는 않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재앙 수준의 재난 목록이 점점 쌓여가고 있으나 아직 나에게 일어나는 일로 받아들이지는 않고 있다. 그런 마당에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삶터를 잃고 난민이 된 사람이 보일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낮은 곳부터 침수가 된다'는 말은 이제 더 이상 몇몇 섬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보내는 구조신호가 아니다. 낮은 곳이 단지 해발 고도만을 뜻하지 않기 때문이다. 연극에서 말하는 낮은 곳에는 멸종위기종도 있고 산업재해를 입은 노동자도 있다. 낮은 곳은 약한 모든 곳이다. 밀려나고 남겨진 생명이다.

극장의 시간은 되돌릴 수 있으나
현실의 지구시간 되돌릴 수 없어


지금과 같은 성장을 지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연극은 말하고 있다. "건강하고 싸고 많고 빠르고 아름다운 상품이 어디에 있겠습니까"라는 대사를 우리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듀퐁사의 나일론 스타킹 일화는 유명하다. 처음 개발한 나일론 스타킹이 엄청 질겼는지 잘 해어지지 않자 빠르게 해어지도록 다시 개발했다는 일화는 노후화를 계획한 전형적인 사례이다. 어디 나일론 스타킹뿐이겠는가. 소비사회에서 계획된 노후화가 돌리는 회전 속도에 걸려들지 않는 상품이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연극은 관객에게 묻는다. "건강하고 싸고 많고 빠르고 아름다운 상품이 어디에 있겠습니까"라는 대사가 불편한지, 그래서 그 회전 속도를 늦출 수 있겠는지 다시 묻는다. 그 긴 암전의 시간에.

연극에는 리허설이 있으나 현실에 리허설이 있을 리 없다. 극장의 시간은 되돌릴 수 있으나 하나뿐인 지구의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극장에서 전하는 기후변화의 이야기는 멈출 수 있으나 현실의 삶에서 겪어야 하는 기후위기의 재난은 피할 수 없다.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