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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전제군주체제를 벗어나 시민 사회가 형성되었던 근대에 이르러 정치와 사회 영역은 분리되기 시작했다. 그 이전 정치권력이 국가 구성원의 사회적 삶을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면, 근대 사회는 인민이 시민으로 위치 지워짐으로써 사회와 정치영역의 체제가 분리되어 운영되기에 이른 것이다. 자유주의(liberalism) 정치사상과 자본주의가 정착되면서 정치권력은 시민 사회와의 길항관계에서 그 정당성을 추인받게 된다. 이렇게 형성된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는 시민의 일상적 삶을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현대사회에서 정치권력과 시민사회는 상호작용하면서 자신의 타당성과 유효함을 확인받게 된다. 이른바 87체제 이후 한국사회는 이런 민주주의의 형태를 절차적인 수준일망정 대체로 잘 수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특권 계층의 이해관계가 과잉 대표되면서 시민 사회적 삶의 영역에 위기가 증폭되고 있다. 자산을 독점한 세력을 중심으로 사회적 정보와 운영권을 과점한 정치 관료 계층과 언론을 비롯한 전문 지식인 집단이 카르텔을 형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진행되면서 정치는 사법화 되었고 이로써 법조세력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마침내 사법의 정치화가 현실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들 계층이 사회적 자산과 그 소유 및 분배 체제를 독점하면서 정치 사회적 위기가 극도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의 경제적 풍요가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시민의 삶이 일상적으로 황폐화되는 것은 모두 이런 체제에서 생겨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의 양당체제는 이런 과점 현상을 가장 잘 보증하는 정치형태이다. 이제 시민사회를 위한 정치는 점차 소멸되고 있다. 


양당 체제는 과점 보증 정치 형태
적당한 갈등·타협으로 '풍요 공유'
시민의 정치목소리 감춰지고 있어


지난 지방선거 투표율이 겨우 50%를 넘어선 것이나 509명에 이르는 무투표 당선자는 물론, 지역별로 특정 정당이 독점할 수밖에 없는 구조는 이런 역기능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지금 시민들에게 다른 선택지는 주어져 있지 않다. 한국 정치는 거대한 국민 인질극을 벌리고 있다. 그 안에서 정치권력을 독점하는 양 정당과 그를 둘러싼 집단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적당히 갈등하거나 외형적으로 타협하면서 권력과 자산, 경제적 풍요를 적대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시민들은 다만 덜 나쁜 세력을 찾아야 하는 인질극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 안에서 일상적 삶은 황폐화하고, 기껏 이룩한 정치 경제적 성과는 특정 집단과 계층이 과점할 뿐이다. 특권을 독점한 계층들이 벌이는 소음에 시민의 정치적 목소리는 감춰지고, 정치적 선택은 다만 이 독점적 공생의 추를 움직이는 무망한 행동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어차피 그가 그일 뿐인데 투표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생활정치는 철저히 파괴되었다.

이를 감시하고 비판해야할 이들조차 이 체제에 속하기 위해 온갖 자기모순과 뻔뻔스러운 행동을 마다하지 않는다. 언론이 앞장서고 있으며, 전문 지식 집단이 추임새를 넣고 있다. 이런 독점 체제의 해체를 요구받았던 정치집단은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기만에 현혹되어 파행을 거듭하다가 스스로 몰락했다. 이를 비판해야 할 지식인은 무력하게 체제에 포섭되어 있다. 물신주의적 문화와 대학의 위기가 심화되는 것은 이 무력함의 한 가지 모습일 뿐이다.

공동선의 규범을 내면화 하면서
사회적 개혁으로 외현화 정신 필요


이 독점 체제를 혁파하지 않을 때 우리 사회의 위기는 심화되어 극단적으로는 해체적 수준으로까지 치달을 것이다. 이들 집단의 강고한 이익동맹을 안일하게 대하거나 한 줌의 성취에 취해 사태를 낙관한다면 변화는 결코 가능하지 않다. 5년을 더 버틴들, 개혁을 참칭하는 정치에 투표한들 이 동맹이 해체될 리 없다. 더욱이 이런 현실에 대한 인식조차 명확하지 않다면 어디서 희망을 찾을 것인가. 자칭 진보 세력의 모습이 겹쳐지지 않는가? 지나간 촛불 현상이 다시 가능하리라 보는가? 기득권 연맹은 시민의 저항에 대처할 방법을 이미 학습했다. 촛불이 다시 켜진들, 그 결과는 참담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공동선의 규범을 내면화하면서 이를 사회적 개혁으로 외현화하는 정신이다. 그 과정을 현실화하는 자기 계몽과 교육이 현재의 지향점이어야 한다. 그를 위한 연대와 실천이 절실하다.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