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파괴할 권리'.
유명 소설의 제목으로 널리 알려진 이 문구는 소설 세부 내용과 별개로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분명합니다. 무수한 개인 집합인 사회는 한 사람의 권리와 자유를 어디까지 인정하느냐가 관건입니다. 개인의 자유와 사회 안정이라는 두 가지 가치가 부딪히는 첨단에 있는 오래된 문제가 '안락사'와 '마약'입니다.
오래 전 고대 로마에선 나이가 든 시민이 곡기를 끊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육체가 노쇠하고 판단능력이 흐려져 사회적 효용이 없는 구성원이 됐을 때 명예롭게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죠. 한 인간의 가치가 그 사람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라는 맥락에서 평가되는 시대였던 것입니다.
현대사회에선 안락사가 논란입니다. 병세가 완연해 인간으로서 존엄이 훼손될 것 같다면 개인이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어떤 경우에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결정을 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 상충합니다. 안락사는 지금도 엄연한 불법입니다.
안락사와 비슷한 맥락에 마약문제가 있습니다. 코카인과 헤로인 같은 중독성이 강한 마약류에 대한 인식은 세계 어디에서나 비슷합니다.
다만 마약류 중 중독성이 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대마초는 늘 논쟁 소재입니다. 북미 일부 지역에선 오락 목적의 대마초 사용을 허가합니다. 어떤 이들은 대마초의 중독성이 담배보다 낮다며 사회 질서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러니까 개인이 조절 가능한 수준에서 대마초를 합법화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합니다.
개인 자유 얼마나 인정하느냐 관건
중독성 약한 대마초 합법화 '논쟁거리'
10여 년 전 만해도 이런 주장을 강하게 펼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대마초 논쟁을 돌아보면, 아직 한국사회는 개인이 대마초를 즐길 자유보다는 대마초를 합법화함으로써 사회가 입게 될 피해와 혼란 쪽에 무게를 두는 것 같습니다.
안락사나 대마초 합법화는 앞서 말한 '나를 파괴할 권리'라는 것에 기초합니다. 존엄한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는 삶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고 터부(taboo)인 규범까지도 개인의 판단에 따라 어기거나 행할 수 있다는 믿음 말입니다.
이런 문제를 깊게 고민하기 위해선 현장으로 가봐야 합니다. 경인일보가 찾아간 곳은 마약 중독 치유재활센터로 지난 2019년 설립된 경기도 다르크(DARC·Drug Addiction Rehabilitation Center)입니다. 이곳에서 12명의 중독자들은 2층 규모의 단독주택에 머물며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복된 마약 중독 경험자인 센터장이 마약 중독 치료를 돕고 입소자들은 각자의 상태에 따라 3개월에서 1년까지 다르크에 머물고 있습니다.
입소자들은 오전 8시에 기상해 식사, 청소를 한 뒤 다르크 미팅으로 하루를 시작하는데 오후에는 심리교육, 음악치료, 회복교육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진행하는 요일별 회복 프로그램에 참여하죠.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 입소자들은 마약에 대한 생각을 잊고 일상에 몰두할 수 있습니다.
道재활센터 경기'다르크' 입소자 12명
규칙적 생활 통해 중독 탈출에 노력
"적발된 7번 아내가 신고 교도소행
죽을만큼 미웠지만 제 인생의 은인"
입소자들이 마약을 접하게 된 계기는 다양합니다. 지인 권유, 병원 처방, 인터넷 검색으로 마약을 접했고 걷잡을 수 없이 마약에 빠졌고 일상에 큰 상처를 남기고 다르크로 오게 된 것입니다. 본인이 40년 동안 마약전과 9범 이력을 쌓은 센터장 임상현씨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 보겠습니다.
"되돌아보니 내 가정이 가정이 아니었어요. 내가 중독으로 점점 망가져 간 사이 가족은 피폐해졌죠. 하나님께 정말 도와달라고, 내 가족을 봐서라도 한 번만 끊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어요. 약물중독으로 적발된 9번 중 7번은 아내가 신고해 교도소에 들어갔어요. 아내에게 왜 신고했냐고 물으니 '사랑해서'라는 답이 돌아왔죠. 처음엔 죽이고싶을 만큼 미웠지만 지금은 아내에게 고맙다고, 제 인생의 은인이라고 말합니다."
17살 때부터 마약을 시작한 임 센터장은 50대 후반까지 마약을 끊지 못했습니다. "약이 주는 쾌락이 나를 사로잡았다. 끊으려고 마음을 먹기까지 10년이나 걸렸다"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마약 중독자라는 사실을 숨긴 채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가라오케 등 사업을 하며 부를 축적했지만 마약은 번번이 그의 발목을 잡았고 단약 3년 뒤, 8년 뒤 끊은 줄 알았던 마약에 다시 손을 댔습니다.
그 사이 모델 출신의 아내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돼 쓰레기를 주웠고 두 아들은 중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죠. 아이들은 학원에 가는 대신 고깃집 불판을 닦았습니다.
병원도 상담시설도 없던 시절, 아내는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 마약에 대해 공부하며 임씨의 단약을 도왔고 결국 그는 단약에 성공해 낮에는 남산에서 주차장 관리요원으로, 밤에는 대리기사로 일하며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반 백 년 생을 이어오는 동안 대부분의 생애를 마약과 함께 한 그는 인생의 반환점을 돈 시점에 '나를 파괴할 권리'가 내 가족도 파괴하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크게는 우리 사회, 작게는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을 파괴한다면 그것을 '권리'라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쾌락을 즐기는 것은 인간의 권리기도 하지만 사람은 누군가와 함께함으로써 쾌락보다 더 큰 행복을 얻습니다. 임 센터장과 다르크의 이야기를 통해 '나를 파괴할 권리'와 진정한 행복을 생각해 봅시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