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의 학파로 북학파라고 말하는 연암 박지원, 담원 홍대용, 초정 박제가 등 큰 학자들이 있지만 그들의 학문과 사상을 다산은 모두 수용하여 크게 이루어냈기 때문에 세 분의 학자가 바로 대표적인 학자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 이야기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참으로 특별한 일은 세 분이 모두 경기도와 매우 깊은 인연이 있다는 것이다. 반계는 태생지야 서울이지만 경기도 땅을 밟으며 온 나라를 두루 여행하였고, 한때는 경기도 여주에서 살아가면서 경기도 사람이 되기도 했다. 비록 은거했던 전북 부안군 반계서당에서 '반계수록'의 대저를 저술했지만 죽은 뒤에는 선산이 있는 경기도의 죽산에 묻혀서 지금까지 경기도와 인연을 맺고 있다. 더구나 그 후손들이 경기도 과천에서 살고 있다는 점으로 보면 경기도 학자임을 부인할 수 없다.
'경세유표'로 개혁 호소했던 '다산'
공직자 공정·청렴 행정 '목민심서'
공정한 수사·재판 주문 '흠흠신서'
성호와 다산은 경기도 태생이자 경기도에서 살았고 세상을 떠났지만 묘소는 경기도에 그대로 남아 자신들의 학문과 사상이 경기도에서도 제대로 계승되어 나라다운 나라가 되기를 그렇게도 염원하면서 눈을 감고 계실 것이다. 반계의 꿈과 희망은 토지의 공개념이 실현되고 인재 선발이 공거제도(公擧制度)를 통해 이룩되어야 한다는 데 목표가 있었다. 토지의 공유(共有)를 통해 제도를 바르게 하고 과거제도의 폐단에서 벗어나 공정한 추천을 통한 인재 선발만 이룩되면 나라에는 반드시 바른 정치가 실현된다고 여겼었다. 요즘과 마찬가지로 부동산 문제와 인재 발탁의 문제점을 개혁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좋은 정치는 오지 않는다고 확신했던 사람이 반계였다고 생각된다.
반계사상을 이어받은 성호 이익은 더 광범위한 국가 개혁의 마스터플랜을 제시하고 있다. 정치·경제·사회의 모든 분야에 대한 철저한 개혁의 주장을 펴면서, 개혁하고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반드시 나라는 망하고 말리라는 깊은 통탄을 거듭거듭 토로했던 우국의 실학자였다. 성호는 '경장(更張)'이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하면서 위로는 율곡 이이와 반계 유형원의 개혁사상을 현실에 맞게 실현하는 것만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고 역설하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치욕적인 외침으로 찌그러진 국력을 되살리려던 반계와 성호의 애국심을 생각하면서, 위기에 처한 오늘 한국은 그들의 간절한 개혁정신을 실천으로 옮기는 일이 급선무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젠 도정 목표 '공렴'으로 내걸고
실사구시·실용주의 세상 펼치길
긴 설명이 필요없는 분은 바로 다산이다. '경세유표'를 저술하여 나라를 통째로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고 눈물어린 호소를 했던 분이 다산이었다. 탐관오리들이 백성을 착취하여 일반 백성들은 살아갈 도리가 없는 세상을 목격한 다산은, 부정과 부패로 썩어 문드러진 공직자들의 의식개혁 없이는 절대로 올바른 세상은 올 수 없다고 믿고 '목민심서'라는 48권의 대저를 저술하였다. 이른바 공직자들의 바이블이라는 '목민심서'의 핵심 요지는 '공렴(公廉)'이라는 두 글자에 있었다. 공직자들이 공정한 마음으로 공정하고 공평한 행정을 펴고, 절대로 사욕을 좇지 않고 공심으로만 일하겠다고 생각한다면 나라는 살아난다고 했다. 공의 개념으로 청렴(淸廉)한 공직자가 청렴한 행정을 편다면 그때에야 요순시대가 온다는 것이 다산의 실학사상이었다.
'흠흠신서'는 공렴으로 수사와 재판을 해야만 억울한 사람이 없는 세상이 온다면서 수사와 재판의 불공정을 비판하고 실체적 진실을 찾아내는 수사와 재판을 주문한 책이었다. 이른바 다산의 3대 저서가 나온 지 이미 200년이 지났다. 다산의 간절한 소원인 책들은 그대로 살아 있는데, 다산의 뜻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 우리나라는 위기에 봉착해 있다. 부동산 문제는 모두를 괴롭히고 있고, 부정부패는 끊이지 않고, 수사와 재판은 억울한 사람만 양산하고 있으니, 어찌해야 할 것인가. 경기도는 실학의 도(道)이다. 이제라도 실학의 꽃을 피워 탐스러운 열매를 맺게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도정 목표를 '공렴'으로 내걸고 본격적으로 실학의 도가 되어 실사구시와 실용주의가 만발하는 세상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