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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남양주시 소재 광해군(1575~1641) 능침을 방문했다 매우 놀란 적이 있었다. 아무리 폐주라 해도 도저히 묘터로 쓸 수 없는 곳에 능침이 조성됐다. 죽어서까지 심한 정치적 모욕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광해군은 임진왜란 당시 세자 신분으로 국난을 극복한 왕이었고, 또 실용과 실리 외교로 국익을 지켜내기 위해 애쓴 치적 많은 국왕이었다. 명·청 사이의 균형외교로 나라의 안위라는 실익을 잘 챙겼다. 윤리적 과오도 없지 않았으나 서인 원리주의자들의 반정으로 폐위된 채 유배지에서 붕어했다. 이 원리주의자들로 인해 나라는 병자호란의 참화를 당했고, 삼전도의 굴욕이라는 국치를 겪어야 했다.

29일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NATO 회의 초청을 받고 참석했다. 서방세계의 일원으로 세계적 공인을 받고 있다는 것에 대해 가슴이 뿌듯하면서도 서로 원수진 일도 없이 앞으로 러시아와의 관계가 더 악화할 것이 불 보듯 뻔해 우려와 걱정도 앞선다. 이뿐 아니라 지난 번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한 것도 이준석 개인의 자기 정치로서는 훌륭한 선택이었는지 몰라도 국익의 관점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집권당 대표의 방문은 러시아의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통령의 나토 회의 참석은 한미동맹관계의 재확인이라는 의미 말고는 얻을 게 별로 없는 일이다.

미국이 한국 대통령을 나토 회의에 초청한 것은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를 계속 유지하려는 의도와 함께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반대하는 튀르키예에 무형의 압력을 가하려는 뜻도 내포돼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우리에게 중요한 나라다. 자원도 풍부하고, 항공우주분야의 첨단기술 협력은 물론 장차 유럽과 한국을 잇는 철도 같은 물류 유통망을 확보하면 우리에게 엄청난 기회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당연히 회의 참석의 반대급부를 요구하고 또 얻어냈어야 한다. 그랬길 바란다.

한미동맹은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하는 한국 외교의 거의 모든 것이요 핵심이다. 그러나 그 한미동맹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바로 국익이다. 광해군의 실리외교, 균형외교는 재평가되어야 마땅하고, 묘역 주변이라도 정비됐으면 한다. 광해군의 외교를 다시 음미해봐야 한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