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지시는 1986년 9월에 공개된 '보도지침'에서 10개월 동안 무려 20회나 반복적으로 나타난 주문이었다. '보도지침'은 제5공화국의 문화공보부 홍보조정실이 국내 신문과 방송 등을 통제하는 가이드라인으로 매일 각 신문사 편집부에 은밀하게 전달되었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나 상황, 사태의 보도 여부는 물론 보도 방향과 내용, 특정 기사의 배치와 원고 분량, 사진의 사용 여부까지 규정하는 편집지침이었다. 보도지침의 기준은 간단하다. 언론이 대통령이나 정부의 치적을 홍보하는 기사는 키우고 정권에 불리한 사건, 야당이나 재야의 목소리는 축소하거나 아예 다루지 말라는 요구였다.
그런데 왜 하필 스케치 기사의 보도형식을 통제했을까? 스케치 기사는 팩트 위주로 간결하게 작성된 스트레이트(Straight) 기사와 달리 사건의 분위기나 정황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보도문이다. 취재 현장에서 기자가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그림 그리듯' 표현함으로써 독자들이 현장 분위기나 모습을 동영상처럼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도록 하게 하는 것이 스케치 기사의 목적이다. 선거유세장 풍경이나 선거 당일 전국 곳곳의 투표장 풍경, 대규모 집회장의 모습 등은 스케치 기사가 적절하다. 현장성과 생동감 때문에 독자들의 흥미를 끌 수 있기 때문이다.
생생한 현장 분위기 그림 그리듯 기사 작성
무소불위의 5공 시절 아예 금지 지침 선택
스케치 기사는 사건 현장에 대한 묘사적 글쓰기로 이뤄진다. 묘사의 글쓰기는 미학적으로는 언어를 사용한 회화적 재현에 해당한다. 묘사는 있는 그대로를 기술한다는 표면적 정의와는 달리 실제 재현 과정에서는 묘사 주체의 태도와 생각이 은연중에 배어들게 마련이다. 묘사 대상의 선택, 대상에 대한 느낌과 묘사문의 언어에 녹아 있는 뉘앙스가 그것이다. 묘사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포함될 수도 있다. 묘사문은 디테일로 리얼리티를 획득하는 정교한 글쓰기이다. 악마(신)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1면 톱의 제목보다 한 줄 스케치 기사가 강한 여운을 남길 수 있다. 무소불위의 5공 문공부도 스케치 기사의 디테일과 뉘앙스에 일일이 개입할 수 없는 법, 결국 스케치 기사의 작성을 아예 금지하는 지침을 선택했던 것이다.
스케치 기사가 허용되는 예외도 있었다. 1986년 4월19일 전두환의 유럽 방문시 대통령 전용기 내에서의 기자회견에 대한 보도지침이 그것이다. "대통령 회견에 대한 스케치 기사에서 기내 임시 집무실에 '다산의 목민심서(牧民心書)가 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는 식으로 뽑을 것"이라는 그날의 지침이었다. 언론이 국민을 생각하는 어진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라는 주문이었다. 이날 신민당 개헌현판식이 대전에서 열렸는데 이 행사에 대해서는 "전례대로 1면 2단기사로 처리하되, 길지 않게 보고하고 스케치성 기사는 싣지 말 것"이라는 지침을 내렸다. 권력은 스케치 기사로 미화 보도하고 국민의 관심사인 개헌현판식의 동정을 알리는 스케치 기사는 내지 말라는 것이다. 스케치 기사의 금지는 현장에서 기자가 본대로 느낀대로 양심대로 쓰지 말고 정부가 '시키는 대로' 받아 쓰라는 명령이었던 셈이다.
요즘 신문 '스케치 기사' 여전히 찾기 힘들어
사진·동영상에 밀리고 '언론 생태계' 위기 탓
야만적인 보도지침이 사라진 지도 30여 년, 그런데 신문에서 스케치 기사는 여전히 찾기 힘들다. 이번엔 통신과 미디어기술이 원흉이다. 사진이나 동영상들이 스케치 기사를 추방하고 있는 중이다. 더 실망스러운 것은 권력의 노골적 통제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여전히 낮다는 것이다. 옥스퍼드대학교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에 따르면 2020년도 한국의 언론 신뢰도는 세계 주요 40개국 중 꼴찌인 40위이다. 조사방식의 문제도 있고 정치 사회적 환경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이 처한 위기는 분명하다. 미디어 환경의 급격한 변화, 그리고 보도지침을 대신한 '보이지 않는 손'이 진실 보도를 위협하고 있는 언론생태계의 현실이 그 위기의 본질이다.
/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