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얕은 바다에서 맨손으로 어패류를 잡는 일을 해루질이라고 한다. 주로 썰물 때 밤 시간에 횃불을 밝혀 갯벌 웅덩이에 갇힌 어류를 잡거나 뻘밭의 조개를 캔다. 물 빠진 갯바위에 숨은 문어, 낙지, 전복 등을 캐내는 재미도 쏠쏠하다. 휴가철 찾은 바닷가에서 해루질로 해산물을 채취한 추억과 함께 먹거리는 덤이니 이만한 꿩 먹고 알 먹기가 없다.
휴가철 추억이나 청소년 해양체험에 머물던 해루질이 최근엔 도시인들의 레저활동으로 확산됐다. 유튜브엔 해루질 명소를 공유하거나, 해루질로 수확한 해산물을 자랑하는 동영상이 즐비하다. 한 방송사는 유명인들이 섬에서 해루질로 수확한 해산물로 포식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한다.
자연 속의 삶을 동경하는 도시인의 로망이 전국 해안가에 펼쳐지자 어민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해루질로 추억을 만드는 사람들이 떼를 이루자 연안 해산자원의 씨가 마를 지경에 이른 것이다. 등산 열풍이 불고 집단 약초 산행이 성행하자 전국 산야의 약초와 나물들이 씨가 말랐던 폐해와 유사하다.
어민들의 하소연은 엄살이 아니다. 지난해 3월 제주 한 마을의 해녀들이 불법 해루질 금지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해루질로 주 소득원인 뿔소라가 사라졌다고 하소연했다. 불법 해루질을 막으려고 해녀들과 마을 주민들이 밤새 불침번을 섰을 정도라니 피해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수도권과 가까운 인천 섬마을 피해도 심각한 모양이다. 옹진군 영흥도는 해루질에 나선 인파들이 종패 크기의 동죽과 바지락을 마구 캐는 바람에 어민 피해가 심각하단다. 잠수복과 작살로 무장한 스킨해루질(스킨스쿠버+해루질)을 비롯해 수중 드론까지 동원한 첨단 해루질로 피해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단다. 전국의 해안 지방자치단체들은 대책마련에 나섰다. 간만의 차이가 없어 해루질이 힘든 강원도에서도 도의회가 해루질 근절 촉구 건의안을 채택했을 정도다.
최근 최인호·이양수 국회의원이 관련 토론회를 개최할 정도로 해루질은 전국 어민들의 골칫거리가 됐다. 어민들은 관련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약탈적 해루질을 자제시킬 법안 마련이 시급하다. 하지만 법에 앞서 어민을 배려하는 도시인의 마음이 먼저 일테다. 취미생활로 남의 생업을 망친다면 법에 앞서 도리에 어긋난다. 해루질은 해안 지방의 전통 어로 문화다. 약탈적 해루질은 자제하고 근절해야 한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