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8월 전남 보성에서 괴이한 일이 발생했다. 여행 온 새내기 대학생 커플이 어장을 구경시켜주겠다는 어부의 배에 올랐다 실종됐다. 경찰은 선주인 오종근을 용의자로 추정했으나 물증은 없었고, 사건은 종결 처리됐다. 사인은 동반자살을 위한 추락사.
오종근은 성적(性的) 충동에 살인을 저질렀다. 먼저 남학생을 물에 빠뜨려 도구를 이용해 익사시킨 뒤 여학생을 성추행하고 같은 수법으로 수장시켰다. 예서 멈췄으면 미제가 됐을지 모르나 한 달 뒤 20대 여대생 2명을 같은 동기, 동일 수법으로 살해하면서 전모가 드러났다.
피해자들은 별다른 경계심 없이 69세 노인의 배에 승선했다. 육지에서 멀어지자 체구가 자그마한 노인이 괴력을 지닌 악마로 돌변했다. 선상(船上)이라는 특수한 환경을 이용해 젊은이들 완력을 무력화했다. 파도에 출렁이는 배는 젊은이들에 불편했으나 바다 환경에 익숙한 노인엔 놀이터였다. 사형선고를 받은 오종근은 현재도 광주에서 수감생활을 한다. 당시 재판부는 '사형과 무기징역 사이에 대체 형벌이 필요하다'며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했다. 헌재는 2010년 5대 4로 합헌결정을 내렸다.
법무부가 사형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헌재에 냈다고 한다. 다음 달 헌법재판소에서 열리는 사형제도 헌법소원 사건 공개 변론을 앞두고서다. 법무부는 "사형제를 존치하는 것만으로 후진적이거나 야만적이라고 볼 수 없다"며 "미국 등 다수의 국가들이 사형제를 존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형의 대안이라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에도 반대했다. 흉악범죄 예방의 필요성을 간과하거나 무시한 주장이라는 거다. 한동훈 법무장관은 '사형은 야만적 복수가 아니'라고 거든다.
대한민국 사형제는 실효를 잃은 지 오래다. 1997년 이후 한 차례도 사형을 집행한 사례가 없다. 지난 2월 현재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감형되지 않은 생존사형수는 59명으로 집계됐다. 최고령자는 오종근이다. 사형이라도 형이 집행되지 않기에 종신형과 다름없다. 미결수로 살다 자연사한다.
헌재 재판관 9명 중 사형제 폐지 입장이거나 검토의견을 낸 재판관은 5명이라고 한다. 위헌 결정이 나오려면 재판관 6명 이상 동의가 필요하다. 인간 존엄에 대한 침해인가, 범죄예방을 위한 적정 징벌인가. 사형제가 다시 갈림길에 섰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