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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인천시 계양구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서권일씨가 키오스크로 주문을 시도하고 있다. 2022.7.4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키오스크에 장애인을 위한 배려는 없는 것 같아요…."

인천 계양구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키오스크로 주문하던 뇌병변장애인 서권일씨는 끝내 주문을 마치지 못하고 매장을 나오며 이렇게 말했다.

4일 오전 10시께 장애인들의 키오스크 활용 실태를 몸소 보여주겠다는 서씨를 따라나섰다.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이하 센터)에서 상담가로 활동하는 서씨는 맨 먼저 센터에서 멀지 않은 한 패스트푸드점에 들어섰다.

서씨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기 위해 키오스크를 몇 차례 누르더니 이내 표정이 어두워졌다. 휠체어에 앉은 그가 팔을 아무리 뻗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터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황하던 서씨는 뒤에 줄을 선 손님들의 눈치가 보였는지 결국 주문하지 못하고 매장을 빠져나왔다. 그는 "키오스크로 주문하지 못할 때는 직원에게 직접 주문해야 하는데 바쁜 시간에는 이마저 여의치 않다"며 "직원에게 말을 걸어도 키오스크를 이용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인근 은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은행에 있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는 장애인도 이용할 수 있다는 표시(장애인 마크)가 있었다. 하지만 기기 앞으로 바짝 다가가도 휠체어로 인해 카드 투입구에 손이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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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인천시 계양구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서권일씨가 키오스크로 주문을 시도하고 있다. 2022.7.4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팔 뻗어 터치 못해 음식 주문 불가
은행 ATM기도 휠체어 가로막혀
'접근성 확보' 法은 있지만 먼 미래


키오스크 이용 시 장애인차별 금지를 명시한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안이 내년 1월부터 시행된다. 그러나 이날 서씨와의 동행에서 나타났듯이 장애인들은 키오스크 사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가 최근 인천을 비롯한 전국 키오스크(음식점·은행·지하철·영화관·대형마트 등)를 살펴본 결과, 조사 대상 키오스크 1천2대 중 529대(52.8%)는 휠체어 사용자가 접근할 여유 공간이 없었다. 또 대부분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안내와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를 제공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공청회에서 '단말기 전면에 휠체어를 타고 접근할 수 있는 공간 확보' 등을 명시한 시행령 초안을 발표했다. 이 같은 내용을 오는 2024년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이에 대해 서씨는 "보건복지부가 밝힌 시행령 초안대로라면 장애인을 위한 키오스크는 법안이 시행돼도 1~2년 후에나 도입되는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장종인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무국장은 "코로나19 발생 이후 키오스크가 많이 도입되고 있으나, 장애인이 키오스크를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은 여전히 열악한 실정"이라며 "프랜차이즈 매장 등 대형 사업장부터라도 먼저 장애인을 위한 키오스크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미 키오스크를 도입한 매장과 소상공인 등은 장애인을 위한 키오스크로 교체하거나 도입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변민철기자 bmc0502@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