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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표 논설위원
민선 8기 전국 지자체장들이 지난주 취임했다. 재선한 박형준 부산시장은 '다시 살고 싶은 부산'을, 오세훈 서울시장은 '약자와의 동행은 평생의 과업'이라며 소외계층을 찾았다. 울산시장은 '새로 만드는 위대한 울산'을 주창했다. 취임사마다 명품, 미래, 환경, 복지, 첨단이란 말이 빠지지 않는다.

4년 임기를 시작하는 단체장들 머릿속은 몽환적(夢幻的) 구상으로 충만하다. 수도권 단체장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인천의 꿈, 대한민국 미래를 만들겠다'고 한다. 8년 전 '인천을 대한민국 발전의 전초기지이자 창조도시로 만들겠다'며 취임했으나 재선하지 못한 이력을 지녔다.

심술 폭우로 경기지사와 시장·군수 여럿이 취임식 대신 수해현장을 돌았다. 시정(市政) 청사진을 뿌리면서 아쉬운 속을 달랬다. 잘만 되면 산업단지에 기업들이 몰리고, 사통팔달 시원한 도로망에 대중교통망이 촘촘한 살기 좋은 명품도시가 멀지 않았다. 자녀들은 강남 8학군 못지않은 교육환경에, 안심하고 학교에 다닐 수 있다.

임기 시작하는 단체장들 몽환적 구상 충만해
주민들은 시큰둥… 시작은 늘 창대 끝은 미약


주민들은 시큰둥하다. 불과 한 달 전이나, 누굴 찍었는지 감감할지 모른다. 유권자 절반 가까이는 투표장에도 가지 않았다. 30여 년, 보고 듣고 경험한 게 있기에 기대치가 바닥권이다. 시작은 늘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했다. 재임 중 얄팍한 밑천에, 일그러진 인성이 들통 나 공천도 못 받은 전임자가 허다하다. 어떤 이들은 주어진 권한을 넘치도록 행사하다 법의 심판을 받는 처지가 됐다. 이런 사유로 재선 시장이 한 명도 없는 도농복합 지자체가 있다. 빛나는 전통은 맥이 끊기지 않았다.

민선 8기가 이전과 다를 게 없을 거란 예견들을 한다. 보름 남짓 인수위를 보면서다. 어떤 당선인 주변엔 자리와 이권을 탐하는 식승(食蠅)들만 꼬였다고 혀를 찬다. 전·현 공직자, 개발사업자, 정당인, 토호, 각급 단체장 집단이 줄을 대려 애썼다는 후문이다. 여러 지역에서 인수위 구성을 둘러싼 잡음이 일었고, 점령군이란 위세가 여전했다는 반응들이다.

지방권력 교체기, 물류업자들이 수난이다. 남양주시는 별내동 물류창고 사업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지난해 4만9천㎡의 물류창고를 짓도록 허가를 내준 사업지다. 양주도 전임시장 때 진행된 물류 창고를 다시 들여다본다. 다른 지역으로 바꾸거나 백지화될 전망이다. 지역은 다르나 변경 사유는 거기서 여기다. 입지가 잘못됐거나 주민이 반대한다는 게다.

공공청사 건립도 암초를 만났다. 민주당 이재준 전 고양시장은 시 청사를 인근 부지로 신축 이전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2천900억원을 들여 2025년 준공한다는 목표다. 국민의힘 이동환 시장 생각은 원점으로의 복귀다. 재정 부담에, 주민들 간 갈등이 우려된다고 한다. 시 청사 옆 초등학교를 옮긴 자리에 신청사를 짓겠다는 여주시 계획도 틀어지게 됐다. 이충우 시장이 하반기 주민투표 카드를 꺼냈기 때문이다.

곰팡내에 찌든 아동돌봄센터 선풍기 하나로
고통받는 민생의 현장에 시장 보이지 않아


전임시장 정책 뒤집기는 소속 정당이 바뀐 지역에서 두드러진다. 예외 없이 개발사업을 막아서고 청사, 복지센터 건립계획을 재검토한다. 공공청사는 무리가 없으나 민간사업은 사정이 간단치 않다. 막대한 매몰 비용에, 줄소송이 뻔한데도 문제가 없다고 한다. 인허가를 내줬던 공무원은 얼굴을 바꿔야 한다. 행정 불신은 상처가 깊고 회복이 더디다.

박근혜 정부는 서민 주거안정을 위해 '뉴스테이 사업'에 속도를 냈다. 수년간 임대한 뒤 분양하는 방식이다. 정권이 바뀌자 경기도 내 10곳 넘는 사업지가 멈춰 섰다. 주택공급이 달리면서 부동산 재앙이 싹텄다. 수년이 지나서야 '장기공공임대주택'이라는 명패로 바꾸고 다시 삽질이다. 시행자 몇은 벌써 망했고, 부동산 시장은 내리막이다.

시장·군수가 취임 행사를 접고 수해현장에 갔다는 미담이 쏟아졌다. 끊긴 다리에 무너져내린 토사 더미를 가리키며 철저한 예방과 복구대책을 하명(下命)했다. 비는 그치고 유례없는 물가급등에 폭염(暴炎)으로 서민들 삶이 말이 아니다. 곰팡내에 찌든 아동돌봄센터는 선풍기 하나로, 쪽방촌 노인은 부채질로 땀을 말린다. 고통받는 민생의 현장에 시장은 보이지 않는다. 민생고는 수해만이 아니다. 위장애민(僞裝愛民) 그만 보고 싶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