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난 건 아니니까요. 하루빨리 정상화됐으면 해요."
최석훈(51)씨는 성남에 본사를 둔 글로벌 프린팅 기업 HP프린팅코리아(이하 HPPK)에서 20년 동안 일해왔다. 인생의 절반가량을 회사와 함께해온 그에게 돌아온 건 갑작스러운 휴업명령 통보였다. 최씨는 일을 쉬게 된 지난 2월부터 6개월 동안 투쟁을 이어왔다.
최씨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두 딸과 아들이 그를 기다렸지만, 일터로 돌아가기 위해 그가 택한 방법은 사측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었다. 그는 날마다 회사 사무실이 아닌 사옥 앞 천막 농성지로 출근했다.
최씨는 "레이저프린트 기술을 갖춘 곳은 전 세계에서 그리 많지 않다. 자부심을 품고 일해왔는데, 사측은 희망퇴직 등 이름으로 사실상 구조조정을 했다"며 "그동안 노조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점이 아쉽다. 사측은 다시는 이런 방식으로 조합원과 직원을 탄압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갑작스러운 휴업명령 통보에
하루아침에 일자리 잃은 11명
법원 가처분 신청 인용 '복직'
최씨처럼 휴업명령 통보를 받아 하루아침에 일거리를 잃었던 노동자 11명은 7일 회사로 복귀했다. 노조가 사측을 상대로 낸 업무정지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이 최근 법원에서 받아들여진 데 따른 것이다.
본안 소송이 진행 중이지만, 확정 판결이 나기 전까지 노동자들에 대한 업무정지 명령은 효력을 잃게 됐다. 다만 이들의 업무가 이미 외주화된 만큼 당장 부서 배치를 받진 못했다.
노조는 이날 성남 HPPK사옥 인근에서 '구조조정 저지 투쟁승리 보고대회'를 열고 노동자 모두가 업무에 정상 복귀하는데 힘 쏟기로 뜻을 모았다.
"회사의 부당함, 확신 있었다"
얼굴엔 숨길수 없는 설렘 드러나
현장에서 만난 노동자들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설렘이 드러났다. A씨는 "회사가 부당하다는 데 확신이 있었다"며 "법원에서 정당한 판결을 한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휴업 기간 기존 임금의 70% 수준으로 생계를 유지하느라 아내가 일을 더 많이 해야만 했다"며 함께 고된 시간을 버텨준 가족에게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휴업 중 업무 복귀를 위해 사측에서 제공한 잡 체인지에 여러 번 참여했다는 B씨도 "법정 다툼을 진행하고 있으니 사측에서도 노력 중이라는 걸 포장하려는 듯 보였다"며 "타 부서에 지원해 일정 기준을 통과하면 해당 업무를 맡게 해준다고 했는데 막상 해보니 쉽지 않았다. 매번 낙방했다"고 토로했다.
한편, HPPK는 이날 업무에 복귀한 이들에게 메일을 보내 "급여 100% 지급 및 복리후생 동일 적용, 업무를 부여하고자 하나 현재 즉시 부여할 업무가 없어 임시로 직무 대기를 명하고 이른 시일 내 정식 업무를 부여할 예정"이라고 안내했다.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