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소설이나 영화를 보고 있을 때처럼 수많은 복잡하고 다양한 이미지들이 머릿속을 떠다니는 경험을 하게 된다.
시집은 내용으로 구분하면 크게 세 덩어리로 나눌 수 있다. 한 부분은 가까운 미래의 디스토피아에 대한 이야기다. 유토피아와도 흡사한 모습을 갖춘 '공중도시'에서 일을 하지만 일을 마치면 다시 땅으로 내려와야 하는 '로이'와 로이가 경험하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
시인은 가까운 미래에 유토피아가 생겨난다 할지라도 그 유토피아를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는 건 결국 소수에 불과할 거라는 세계관을 설정해 작품을 풀어낸다.
또 다른 부분은 'Long Walk'라는 긴 길이의 시다. 이 시는 디스토피아마저 파멸된 부서진 세계에 살아남은 극소수의 사람들이 강철로 된 둥지의 커다란 새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담아낸다. 새를 찾아 나선 사람들의 사연들이 하나하나씩 시 속에 펼쳐진다.
시인은 카자흐스탄의 격납고에 방치된 러시아의 우주왕복선에 대한 기사를 보고 상상력의 자극을 많이 받아 이 시를 쓸 수 있었다고 한다. 마지막은 냉전 시대 유행했던 스파이(SPY) 물과 같은 시다.
1·2부 11편, 3부 12편, 4부 1편, 5부 10편 등 45편의 시가 시집에 담겨있다. 전반적으로 시 한 편 한 편의 길이가 길다. 특히 4부에 실린 'Long Walk'는 시 1편 분량이 25페이지에 이를 정도다.
시인은 이야기를 압축하기보다는 긴 시가 쏟아내는 다양한 이미지들 속에서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깎아내지 않은 거친 이미지들이 모여서 거대한 형상을 이뤄내는 시를 추구한다고 한다.
한편, 이원석 시인은 202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인천에 살고 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