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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06년의 일이다. 나와 함께 사단법인 한국철학사상연구회에서 활동하다가 성공회 사제로 서품 받은 이한오 신부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신부님은 당시 경기도 수원에 있는 '나눔의 집'에서 사역하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노숙인 자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니 인문학 강의를 맡아서 8주간 동양철학을 강의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당시 나는 대학 강의 외에는 별다른 경험이 없었거니와 더욱이 노숙인을 대상으로 인문학을 강의한다는 말은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으므로 강의를 잘 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신부님의 간곡한 요청을 물리칠 수도 없어서 하는 수 없이 강의를 수락했다.

강의를 시작하는 날 '나눔의 집'에 도착하여 관계자 몇 분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신부님이 내게 이르길, 자활 교육에 참여한 이들은 대부분 오랜 기간 노숙 생활을 해왔고 알코올중독이나 우울증을 비롯하여 여러 질환을 앓고 있으며 경제적으로는 거의 모두 신용불량 상태라고 귀띔했다. 말씀을 듣고 나는 속으로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그런 처지에 놓인 분들을 상대로 동양철학을 강의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또 그게 과연 가능하기나 한 일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이윽고 강의를 시작했다. 별다른 묘책이 없었던 나는 그냥 평소 대학생들에게 하던 대로 공자왈 맹자왈 하면서 똑같이 강의했다. 아마도 칠판에 한글보다 한자를 더 많이 썼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다수의 노숙인을 상대로 그렇게 강의한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첫 강의를 진행하면서 나는 크게 놀랐다. 100명이 넘는 청중이 두 시간 동안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노숙인들 대상으로 '인문학 강의'
100여명 2시간 동안 놀라운 집중력
"병자 취급않고 동등하게 대해줘"


해프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맨 앞자리에 앉아있던 어떤 분이 강의 내내 고개를 좌우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통에 강의를 진행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은 자율신경계에 질환이 있어 몸동작을 뜻대로 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신기하게도 그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 그 동작이 강의하는 데 조금도 방해가 되지 않았다.

청중의 호의 어린 반응에 자신감을 얻은 나는 매주 즐거운 마음으로 수원을 오가며 강의를 진행했는데 서너 주가 지난 뒤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이 지긋한 노숙인으로부터 내 강의가 프로그램에 포함된 여러 강의 중에서 최고로 인기라는 말을 들은 것이다.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자활 프로그램에는 음악이나 미술을 비롯한 재미있고 유익한 강좌도 여럿이 함께 편성되어 있었는데 어떻게 알아듣기도 힘든 동양철학 강의가 최고 인기강좌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아무튼 용기백배한 나는 더욱 열정적으로 강의를 했고 이런저런 사소한 일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8주간의 강의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이윽고 따뜻한 박수 소리와 함께 마지막 강의가 끝나고 서로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어떤 분이 이렇게 이야기했다.

"다른 교육프로그램은 걸핏하면 우리를 병자나 정신이상자로 취급해서 기분이 나빴는데 교수님만은 우리를 동등하게 대해주셨어요."

또 다른 분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철학을 이야기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교수님이 처음입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하는 어렵고 무거운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던 것은 내가 하는 말이 유익하거나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하는 그분들의 안간힘이었던 것이다.

8주간 수업후 인사에서 깨달은 것은
'인간의 존엄성' 지키려는 안간힘


나는 그 강의를 통해 노숙인들의 삶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아졌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다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인간의 가치를 함께 나누었다는 사실만은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이후 나는 내가 하는 인문학의 의미와 인문학이 있어야 할 자리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 인문학이며 삶의 가장 힘든 순간에까지 필요한 것이 인문학이며 그런 자리에 있을 때 인문학이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