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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
한국정치의 성격을 규정짓는 말 중 '적대적 공생'이란 말처럼 정확한 말이 있는가 싶다. 물론 적대적 공생이란 단어는 비단 정치에서만 쓰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진영정치가 위세를 발휘하는 한국정치에서 이 단어는 정치를 함축하는 상징적 용어다.

민주화 이후 5년만에 정권교체를 경험한 첫 대선에서 패배한 더불어민주당은 선거에 진 책임에 대해 지지자들에게 성찰과 숙고로 답하지 않았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친문 대 친명의 계파갈등이 그칠 줄 모른다. 오는 8월28일 전당대회에서의 당권을 차지하기 위한 권력다툼이다. 국민의힘은 이준석 대표와 윤핵관의 권력투쟁이 점입가경이다. 윤석열 대통령을 권력의 핵으로 하는 그룹들은 이 대표를 끌어내리는 데 일단 성공한 형국이다.

'0.73' 매직의 함의를 두 정당 모두 잊고 있는 결과다. 대선에서 승리한 국민의힘에게 이 의미는 야당과 부단히 소통하고 문재인 정권 때의 정권을 변경할 때 충분히 협의하여 국회는 물론 국민일반의 동의를 구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압도적 승리의 경우 이러한 절차가 생략될 수 있는 것에 대한 경계가 선거라는 집단지성으로 표출된 것이다. 민주당은 불과 0.73%라는 근소한 차이로 졌지만 5년만에 정권을 내 준 참담한 결과를 거울삼아 팬덤에 몰입되고 독선과 내로남불에 도취된 행태를 근본부터 바꾸고 진보의 본래의 가치를 찾으라는 국민의 명령이었다.  


여야, 선거직후 당권잡기 권력투쟁에 몰입
양당 당내 갈등 개선안된 공천제도에 기인


그러나 두 정당 모두 선거 직후부터 당권을 잡기 위한 당내 권력투쟁에 경쟁하듯이 몰입하고 있다. 여권은 정부 내의 여러 혼선을 노출하고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은 해묵은 안보이데올로기 논쟁으로 본질이 비껴가고 있다. 급기야 여권의 지지율은 임기 말 식물정권을 방불케 하는 30%대로 추락했다. 검수완박법은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심판으로 번졌고, 야당은 여권이 검찰과 경찰을 장악하기 위해 좌동훈 우상민을 내세워 역대급 권력사유화에 나섰다며 탄핵까지 거론하고 있다. 총선은 아직 2년 가까이 남았다. 양당의 적대는 선거 전보다 더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첫째, 당내 갈등은 공천제도에 기인한다. 대선 주자는 공천권을 확보해야 차기 대선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고, 국회의원을 비롯한 차기 원내진입 희망자들은 공천권을 행사하는 주자에게 줄을 서야 공천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이러한 구조를 혁파하지 않으면 당내 갈등은 구조적으로 반복되고 특정 정치인을 중심으로 하는 패거리 문화는 청산될 수 없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내부 권력투쟁의 본질이다.

둘째, 여야의 극한 대립은 지지자만을 의식한 구태정치에 기인한다. 국민의힘이 대선과 지방선거에 승리한 것은 민주당의 과오에 기인한 면이 크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자신이 국민에 어필해서 정권을 차지했다는 선거 결과의 오독(誤讀)에서, 민주당은 당내 강성의원들이 자신들의 정체성 정치를 위해 발신하는 강경한 메시지에 의해 과다대표되는 오류를 여전히 반복하기 때문이다.

극한 대립도 지지자만 의식 구태정치 원인
'통합·협치' 정치수사 마저 아예 자취 감춰


첫 번째 공천관련 혁신은 여야의 인식이 공유되어야 하고, 숱한 제도적 제안에도 개선·지양되지 않았기 때문에 단기간내에 이루어질 수 없다. 한국정치가 안는 문제적 숙명이다. 두 번째 양당의 정책 차이와 현안에 대한 극명한 견해 차에 대해서는 어느 일방의 노력으로 되지 않겠지만 국정의 최종 책임자인 여권이 보다 포용력을 가져야 한다. 상대를 적으로 인식하는 전략적 극단주의를 깨는 쪽이 이기고, 적대하는 쪽이 소멸한다는 인식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여야가 현안에 대해 접점을 공유하지 못하고 모든 사안에서 대립하는 것 자체가 정상이 아니다. 영어로 여당은 ruling party이고, 야당은 opposition party이지만 이는 여야가 건강한 견제와 균형을 견지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어차피 '통합'과 '협치'는 정치수사였지만 그나마도 아예 자취를 감췄다. 노골적 대치가 본격화된 것이다. 여야가 적대적 공생의 퇴행적 행태에 기대다가는 '공생'이 아닌 '소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