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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우 작가
한국에선 잘 모르지만 매년 6월 15일은 세계 70여 개국의 노동자들이 기념하는 날이다. 바로 '청소와 경비 노동자를 위한 국제 정의의 날'이 그것이다. 발단은 1990년 6월 15일 미국 LA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낮은 처우에 고통받던 건물관리 노동자들은 각 도시에서 시위에 나섰는데 LA 경찰이 문제를 일으켰다. 가두행진 중이던 시위대를 곤봉으로 두들겨 팬 것이다. 19명의 중상자를 비롯 90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와중에 한 명은 두개골이 골절되고 한 임신부는 아이를 유산했다.

경찰은 시위대가 해산명령에 불복했고 정당방위라고 주장했지만 여론은 냉랭했다. 언론에 실린 폭력 진압은 대부분 남미계로 불법 이민자도 많았던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압도적인 공감 여론으로 바뀌었다. 건물주들은 청소업체에 합의를 종용했으며 LA 경찰은 수백만달러의 합의금까지 치러야 했다. 이 6월 15일의 비극과 노동운동의 정당성을 기리는 날이 바로 '청소와 경비 노동자를 위한 국제 정의의 날'이다.


연세대 청소원들 시급 인상 요구
물가상승으로 400원 올라도
실질임금은 하락할 가능성 커


얼마 전 한국에선 1990년의 LA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연세대 청소노동자의 시위가 공부를 방해한다며 학생 3명이 민형사소송을 건 것이다. 미국에선 경찰이 곤봉으로 진압하려 했다면 한국에선 명문대 대학생이 소송으로 진압하려 드는 모양새다. 이들의 소송은 큰 이목을 끌었고 몇 개월에 걸친 청소원들의 쟁의가 이윽고 주목을 받고 있다. 여전히 열악하기 그지없는, 전쟁통에나 쓸 법한 휴게실에도 언론이 관심을 보여준다.

이 건을 보노라니 특히 저임금 노동자의 협상력 강화가 '살 만한 개천'을 위해, 또 모두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스웨덴 노총 산하의 건물관리 노동조합인 파스티히츠(Fastighets)와 서비스부문 고용주 단체 알메가(Almega)의 단체협약을 보면 연세대 청소노동자의 요구는 소박하기 그지없다.

연세대 청소원들은 시급 9천390원에서 400원 인상을 요구 중이다. 용역업체는 200원을 제시했다. 식대와 주휴수당을 합하면 연 100만원과 50만원가량의 인상 폭이다. 역대급의 물가상승으로 인해 400원(4.3%)이 올라도 실질임금은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식대와 주휴수당을 포함한 연세대 청소원의 시급은 1만1천968원이다. 식대와 주휴수당이 없는 스웨덴 청소원의 최저시급은 144.68크로나로 한화로는 1만8천123원이다. 한국보다 51.4%가 많은데 물가를 고려해도 한결 많은 건 마찬가지다. OECD에 따르면 2022년 4월 기준 스웨덴의 물가는 한국보다 27% 비싸다. 2021년 기준 구매력 평가 환율로 보면 연세대 청소노동자 시급은 12달러, 스웨덴은 15.4달러로 28% 더 많다. 스웨덴의 청소노동자는 2021년 1월에 타결된 단체협약에 따라 올 11월부터는 최저시급이 148.45크로나(1만8천547원)로 인상된다. 연세대 청소원의 시급이 200원 오르면 스웨덴 청소원이 받는 최저시급과의 격차가 유지되고, 400원 오르면 정말 눈곱만큼 좁혀진다. 어느 쪽이든 '살 만한 개천'으로 가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스웨덴의 청소노동자는 3·5·7년차가 될 때마다 각각 340원, 610원, 950원가량 시급이 오른다.

스웨덴과 임금외 보상도 큰 차
시위 줄이는건 '살만한 여건' 개선


한국과 스웨덴 청소노동자의 처우는 임금 외 보상에서도 벌어진다. 스웨덴의 고용주 사회보험료는 급여의 31.42%에 달한다. 여기에 파스티히츠와 알메가의 단체협약에 따라 노후 등에 대비한 민간보험료로 4.96%가 추가된다. 연세대 청소노동자의 경우 4대보험과 퇴직금을 모두 더해도 18.6%에 그친다. 또 스웨덴에선 2년차부터 법정 연차가 25일이고 단체협약으로 통상 그 이상의 휴가가 보장되는데 휴가수당 덕분에 장기휴가를 다녀올 때의 수입이 일만 할 때보다 더 많다.

한국은 저임금 노동자의 협상력과 권익이 매우 약한 나라이고 그래서 이들이 사는 개천의 여건이 낙후되었다. 탁자에서의 협상이 여의치 않다 보니 집회와 시위도 빈번하다. 최근 한국엔 취약계층의 시위에 대한 해소책으로 아예 시위를 억누르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책 중의 하책이다. 그러한 불편을 줄이는 최선책은 개천의 여건을 하루빨리 개선하는 것이지 고소도 멸시도 아니다.

/장제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