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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함민복 시인이 1996년 발표한 '긍정적인 밥'의 첫 구절이다. 시 한 편이 밥이고 생계인 가난한 시인에게 야박한 원고료는 늘 서운하고 서러웠을 테다.

시인이 쌀 두 말을 삼만원으로 계산했던 1996년 언론 보도를 찾아보니, 상품기준 쌀 20㎏의 도매가격이 3만3천970원이다. 시인의 계산과 얼추 들어맞는다. 오랜 세월 뒤주에 고인 쌀 높이는 이 땅의 백성들에게 목숨이 걸린 눈금이었다. 지금도 서민들은 쌀값에 민감하다. 유전자에 쌀에 목숨을 걸었던 역사적 문화적 트라우마가 새겨진 탓일 테다. 시인이 원고료를 쌀 두 말로 바꿔보고 나서야 마음의 안정을 얻은 연유를 짐작할 수 있다.

세계적인 초인플레이션 시대에 유독 쌀값만 폭락해 농민들 걱정이 태산이다. 농협 창고에 재고미가 꽉 차있는 상황에서 45년만에 가장 큰 하락 폭이란다. 햅쌀 수확철이 임박하면서 쌀값 하락을 더욱 부채질할 것이란 전망이다. 곡창지대인 전라남도는 창고를 비우기 위해 도 전체가 판매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1등미 생산지인 경기도 이천도 햅쌀을 야외에 쌓아 놓아야 할 정도로 창고마다 쌀이 그득하다.

쌀값 폭락 이유는 늘 그렇듯 수요를 훨씬 웃도는 생산량 때문이다. 기후영향으로 다소 들쭉날쭉하지만 생산량은 꾸준한 반면, 수요량은 격감했다. 지난해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56.9㎏이다. 1일 소비량 155g으로 경실련이 계산해보니 국민 1인당 매월 쌀값 지출금액은 1만1천원, 하루 356원에 불과하단다. 1980년 1인당 쌀 소비량이 132.4㎏, 1990년 119.6㎏인데 비하면 고봉밥을 먹던 국민이 햇반 하나로 하루를 때우는 격이니, 생산량을 감당할 수 없다.

그런데 농민은 쌀값 폭락으로 아우성인데 소비자들은 전혀 체감하지 못한다. 실제 소비자들의 쌀 구매가는 역대 최고 수준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대기업의 햇반과 식당들의 공깃밥 가격도 올랐다.

쌀은 넘쳐나는데 생산 농민은 가격 폭락에 울고, 소비자는 가격 인상에 놀라니 경제 원론에 없는 현상이다. 공공 수매자인 정부의 시장 관리 실패 탓이 클 테다. 나라 뒤주에 쌀이 가득한데 농민과 서민만 우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