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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운명이나 나라의 운명이 흥하고 망하는 양상과 원리를 가늠하고 추측하는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유학에서는 가장 이상적으로 인생을 살다간 인물을 언급할 때마다 요순타령을 한다. 순임금의 인생에 대한 평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순임금은 살아서는 효성스러웠는데 그 덕이 성인(聖人)의 수준이고 세상의 존귀함으로 따지면 가장 높은 자리인 천자를 지냈고 부유함으로 따지만 천하의 모든 것이 그가 관할하는 것이었다. 죽어서는 종묘에 합사되었으며 자손이 그 제사를 보전하였다. 공자는 세상이 이런 복이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순임금에 대해 극찬을 해놓았다.

그런데 순임금이 이런 복을 누린 이유에 대해 큰 덕의 소유자임을 일깨운다. 그가 높은 자리와 봉록과 명예와 수명을 얻은 것은 전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바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인데 그 바탕이란 것을 큰 덕인 대덕(大德)으로 보았다. 덕이 모든 복을 부르는 원인이자 바탕이라는 주장은 우리에게 와닿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을 다시 식물의 생장원리에 비유해서 일깨워준다. 자연이 만물을 낳고 기를 때 하나의 원칙이 있다는 것이다. 만물을 생장할 때는 반드시 그 바탕에 따라 두텁게 해준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 바탕이 뿌리를 내려 똑바로 선 것은 북돋아주고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해 늘어져 시든 것은 엎어버린다. 나라의 성패도 마찬가지이다. 그 나라의 미래를 설계하고 운영해 나가는 사람들의 바탕에 운명이 달려있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