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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를 이용하야 인심을 격발케 하고 장래 국내의 대폭발을 촉기(促起)하려 함이라." 도산 안창호가 1920년 2월 17일 일기에 남긴 글이다. 1919년 3·1운동 직후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3·1운동에 버금가는 거족적 항일 투쟁을 이어가려 했다. 도산은 비행기를 선전·연락·침투와 같은 대일 비정규전의 요긴한 수단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비행기 구매는 결국 실패했다.

대한민국 공군은 1949년 창설됐다. 육군본부 항공국에서 공군본부로 독립했지만 보유 전력은 비무장 L형 연습기 20대가 고작이었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조종사 한 명은 조종간을 잡고 한 명은 폭탄을 손에 들고 북한군 탱크를 겨냥해 팔매질했다. 소련이 제공한 북한 야크 전투기를 만나면 꼼짝 없이 격추될 운명이었다.

그나마 미국이 공여한 프로펠러 전투기 P-51 머스탱으로 공군 꼴을 갖췄고, 전후엔 '쌕쌕이'라 불린 제트 전투기 F-86 세이버로 전술 공군으로 변신했다. 1969년엔 월남전 참전 대가로 최신예 초음속 전투기인 F-4 팬텀의 네번째 보유국이 되면서 북한 공군 전력을 앞서기 시작했다. 당시 팬텀에 대한 국민 신뢰는 대단해 추가 구매를 위한 방위성금 모금에 나설 정도였다.

미국에 전적으로 의지하던 대한민국 공군이 전투기 독립시대를 열었다. 19일 4.5세대 국산 초음속 전투기 'KF-21 보라매' 시제기가 시험 비행에 성공한 것이다. 2001년 김대중 대통령이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국산 최신예 전투기 개발을 선언한 지 21년 만이다. 스텔스 기능을 갖춘 KF-21은 현존하는 최고 전투기 F-22 랩터에 비유해 '베이비 랩터'라는 별명이 붙었다.

공군은 2032년까지 120대를 실전에 배치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수입기 F-35와 함께 공군 주력기종 전체가 스텔스 기능을 보유한 막강한 전력이 된다. 국산 전투기 생산으로 우리 지형과 전략에 맞는 전술 미사일을 마음대로 탑재할 수 있어 국방력 전체가 업그레이드되는 효과가 있다니 든든하다.

KF-21 개발 21년 동안 진보와 보수 진영 대통령이 6명이었다. 사업 타당성을 두고 논란이 있었지만 개발이 지속된 데는 진영을 초월한 자주국방 의지 덕분일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시작해 윤석열 대통령 때 결실을 맺은 'KF-21 보라매'의 의미가 각별하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