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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허구가 현실을 지배한다. 2016년 12월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인 문재인은 원전 재난영화 '판도라'를 관람했다. 제작진과 무대에 오른 그는 "판도라 상자(원전)를 치워야 한다"며 원전 추가 건설 금지를 통한 탈핵, 탈원전 국가를 주장했다. 다음해 박근혜가 탄핵돼 물러난 대통령 자리에 오른 그는 무대 인사를 대국민 정책 선언으로 발표했다.

최근 종방된 tvN의 '우리들의 블루스'와 방송 중인 ENA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통해 발달장애가 뜨거운 의제로 떠올랐다. 우리들의 블루스의 영희는 다운증후군을 앓는 발달장애인이자 천부적인 화가이다. 영옥은 죄책감과 현실에서 고통받는 보호자다. 언니 영희를 감당할 수 없어 지하철에 버리기도 하고, 시설에 맡긴 채 외면한다. 영옥은 언니의 그림을 보고 무너지고, 드라마는 해피엔딩을 암시하는 열린 결말로 끝난다. 영희의 실제 캐릭터인 정은혜 작가가 열연해 화제가 됐다.

영희가 화가의 재능에도 불구하고 피보호자 캐릭터라면, 자폐 변호사 우영우는 범접 불가능한 천재성으로 법정을 지배한다. 우영우를 연기한 박은빈의 사실적 열연이 자폐인을 향한 세상의 편견을 해소했다는 호평이 자자하다. 광범위한 자폐 증상을 특정하는 것 자체가 차별이라는 뜻에서 '자폐스펙트럼'이라는 용어를 대중화시킨 점도 특별하다.

드라마 히로인 영희와 우영우에 이어 최근엔 실제 발달장애인 히어로가 깜짝 등장했다. 국내 최초 발달장애인 프로골퍼 이승민이 제1회 장애인 US오픈에서 우승한 것이다. 허구와 현실에서 동시에 등장한 자폐 천재들의 인간 승리 스토리로 '발달 장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강렬하다.

하지만 발달장애인 가족들은 '아주 특별한 우영우'를 지켜보기 힘들다고 한다. 우영우 보다는 형 살해범으로 몰릴 뻔한 '정훈'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특별한 재능으로 전업작가로 성공한 정은혜와 프로골퍼 이승민은 발달장애 가족에겐 너무 특별해 허구에 가까워, 희망인 동시에 고통이다.

문재인은 수백만분의 1 밖에 안되는 원전사고를 상상한 영화적 허구를 탈원전 정책이란 현실로 만들었다. 하지만 자폐스펙트럼과 지적장애를 겪는 발달장애인 25만명은 확률이 아니라 현실을 사는 존재들이다. 영희와 우영우, 이승민이 발달장애인의 권리를 회복하는 정치, 사회적 변화로 이어지길 바란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