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같은 IT세상에서는 웹 검색을 통하면 원하는 지식과 정보를 거의 다 얻을 수 있다. 인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그녀가 역사적 인물이든 작가든 연예인이든 검색만하면 거의 다 나온다. 요새는 대부분 역사적 인물이나 예술인보다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들이 먼저 화면에 올라오는 경우가 많지만, 이런 소소한 정보도 입력한 이의 수고뿐만 아니라 수많은 인물들을 정리한 이들의 노고와 연구가 축적되어 있지 않았다면 얻을 수 없는 정보다.
한동안 세계 각국의 인물 정보를 얻으려면 '후즈후'(who's who)라는 세계 인명 백과사전을 이용해야 했다. 근대 조선에서도 이런 국내판 '후즈후'가 있었다. 지금부터 꼭 100년 전인 1922년 홍문사에서 나온 '조선고금명현전'(1922)이 그것이다. 지금이야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정보는 고급 정보나 전문 지식에 포함되지도 않지만, 이 같은 보편성을 만들어 내기까지 수많은 이들의 노력과 수고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조말 역사상 인물 889명과
최치원 부터 조돈까지 77명의 초상화 정리
도서관이나 출판사정이 열악했던 그때 그 시절 삼국시대부터 조선조 말까지 역사상의 인물 889명과 더불어 동국문종(東國文宗)으로 통하는 고운 최치원의 초상화부터 죽석 조돈(竹石 趙暾)에 이르기까지 77명의 초상화를 정리해놓은 귀중한 자료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역사적 인물들도 있고 낯선 인물들도 있으나 일체의 개인적인 평가를 내리지 않고 있는 사실들만 함축적으로 기술한 짧은 행장이 연대기 순으로 정리돼 있다. 안타깝게도 이 방대한 작업을 수행한 저자가 누구인지 밝혀져 있지 않고 편자(編者)라고만 되어 있다.
편자는 서문에서 이 책을 가리켜 '우리 동방의 선조들에 대한 기사로 윤리 도덕에 대한 견문이며, 충정의열에 대한 사적이니 어찌 감히 조금이라도 소홀하겠는가(我東祖代記事라 倫理道德見聞이요 忠貞義烈事蹟也니 豈敢少忽哉아)'라 말하고 있어 편자의 의도와 방향이 무엇인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나라를 잃은 우울한 시기 우리에게 훌륭한 인물과 조상이 있음을 상기하는 것으로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키려 한 책이 바로 '조선고금명현전'이다.
훌륭한 조상 상기 민족적 자긍심 고취시켜
책에 한참 빠져보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역사서는 다른 한편으로 정치적 담론이요, 승자들의 기록이기에 "역사를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 한 E. H. 카의 말이 그저 낭만적인 멘트로 들리지만, 내게 지난날의 옛 책들만큼은 정말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 자체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한양(漢陽) 조씨(趙氏)가 배출한 역사적 인물 정암 조광조에 대한 기술이 있어 이를 지인으로부터 염가(?)로 빼앗다시피 구입해 두었다가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책을 찾으려 서가를 정리하다가 문득 이 책을 발견하고 한참을 책장을 뒤적였다. 한참 동안 본래의 목적을 까맣게 잊고 '조선고금명현전'에 빠져버렸다.
살아보니 별 게 없는 짧은 인생을 살면서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몰입을 제공해 주는 일이 있다면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내게는 그마나 문학작품과 고서가 이 세상에서 가장 흥미를 끄는 몇 안 되는 관심거리다. 살면서 몰입할 수 있는 일도 있고, 나아가 '명현(名賢)'까지는 아니어도 많은 이들에게 오랫동안 기억되는 삶을 산다면 그것이 바로 성공적인 인생이 아니겠는가.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