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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학자 허세욱 교수(1934~2010년)는 외대 중국어과를 나와 타이완사범대 중문과 대학원에서 시를 공부하고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어로 시와 수필을 발표해 중국 문단에 등단했다. 국내에 돌아와서는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며 한국외국어대와 고려대에서 후학을 길렀다.

중국 고전 산문집 '배는 그만두고 뗏목을 타지'는 2000년 초 출간됐다. 허 교수의 해박한 소양과 위트 넘치는 번역이 글의 품격과 재미를 더한다. '굴원의 노래', '출사표', '적벽가', '악양루기', '추성부' 등 명품 산문 83편을 만날 수 있다. 2천 년 전 봉건 문학부터 명·청 시대 명작까지 두루 실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여름휴가 때마다 출입기자들에 책을 선물했다. 대변인실은 매년 휴가철에 네댓 권씩 나눠주며 대통령이 피서지에서 읽을 책이라고 전했다. 허 교수의 중국 산문집은 어느 해 여름 대통령 독서 목록 맨 앞에 있었다. 대통령의 책은 언론을 통해 소개됐고, 그해 하반기 베스트셀러로 주목받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첫 휴가를 떠났다. 휴가중 읽을 대통령의 책은 알려지지 않았다. 출입기자들에게 책을 선물했던 관행도 옛일이 됐다. 기자들 숫자가 늘어난 탓도 있겠으나 가로막(김영란 법)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휴가철을 앞두고 대변인실은 출입기자들에게 '대통령이 봤으면 하는 책을 권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허 교수 산문집 중 '누가 더 이쁜가요' 편은 중국 정(鄭)나라 추기가 왕에게 한 간언을 옮겼다. 잘생긴 선비(서공)보다 추기가 더 낫다고 추켜세우는 부인은 (자신을) 편애하는 탓이고, 첩은 두려워하는 것이며, 손님은 이용하려 한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다음날 위왕(威王)을 만나 일화를 전하며 궁궐의 비첩들과 문무백관, 백성이 이와 다르지 않다고 고(誥)한다. 위왕도 맞장구치며 흔쾌히 동의하고 누구나 직언을 하면 상을 주겠다고 명한다.

윤 대통령 국정지지율이 30% 밑으로 추락했다. 여당은 사분오열에, 자중지란이다. 고물가에 무역적자 누적으로 성장률은 둔화됐고, 코로나가 재창궐한다. 휴가라고 마음이 편할 수 없을 듯하다. 국정 운영을 두고 쓴소리가 쏟아진다. 돌아선 민심을 추스르고 위기의 정국을 돌파할 반전 포인트가 절실한 시점이다. 휴가철, 대통령의 책이 궁금하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