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세계 6위 군사강국이다. 잠수함과 이지스 구축함을 건조하고, 국산 스텔스 전투기 시험비행에 성공한 나라이긴 하다. 현실은 공허하다. 미국, 러시아, 중국과의 격차가 엄청나 6위를 실감할 수 없다. 국가 안보는 친중사대와 한미동맹을 오락가락하고, 핵무장국 북한이 우리를 하대한다. 세계 6위 군사강국의 실상은 최소한의 자위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경제든 군사든, 아니면 둘을 합친 국력이든 규모는 세계급으로 성장했지만, 지정학적 종속 현실이 변한 적은 없다. 역사의 왕조들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은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위기가 숙명인 나라이다.
산업·민주화로 나라꼴 갖추고 국민주권 수복
정치·행정 등 권력 두패로 갈려 기득권 쟁탈
기적은 역설에서 탄생한다. 대한민국은 위기를 생존의 동력으로 전복했다. 악착같이 일했다. 전 국민이 인권과 복지를 유예하고 노동 전사가 돼 산업화에 매진했다. 엔화로 고속도로를 놓고 제철소를 지었다. 하청기업 수준이던 국가경제는 세계경제의 선순환 고리를 타고 독자 브랜드 경제로 도약했다. 경제에 숨통이 트이자 유보된 민주적 권리를 회복하려는 열망이 폭죽처럼 터졌다. 국민은 민주화에 목숨을 걸었고 쟁취했다.
1970, 80년대 산업화와 민주화 전쟁을 관통하면서 나라 꼴을 갖추고 국민 주권을 수복한 기적의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불과 반세기도 안되는 시간의 기적이었고, 40대 이상 국민은 이 시대의 참여자이자 증언자들이다. 위기에 직면한 나라와 국민의 본능적 연대야말로 대한민국 국력의 실체였다.
지금 대한민국. 위기의 본질은 그대로인데 연대는 사라졌다. 모든 권력들이 부쩍 커진 나라의 허우대에 홀렸다. 나라를 살찌우기보다 뼈를 발라 먹는데 전념한다. 정치인들이 타락했다. 좌파는 민주를 홀대하고 우파는 경제에 소홀하다. 그들의 이념은 나라와 국민 대신 세속의 기득권을 지향한다. 권력이 인격이고 지도력이고 자질이라 여긴다. 권력이 나쁜 사람도 세탁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정치적 좌·우의 맹목적인 권력욕이 이성의 공간을 오염시켰다. 관료들은 좌·우를 살펴가며 출세하고 연명한다. 위리안치된 검사는 총장을 꿈꾸며 정권교체를 고대한다. 총경들은 대통령과 정부의 치안통수권을 거부하며 정치에 입문했다. 부끄럽지만 언론도 정치적 오염을 면치 못했다. 정치, 행정, 경제, 사회 권력 전체가 두 패로 갈려 기득권 쟁탈전을 벌이는 형국이다.
권력의 폐단은 신속하게 아래로 흘러 나라를 망치고 국민을 죽인다. 지방자치는 참담한 고비용 저효율의 현장이다. LH 직원들은 공공 정보를 투기에 써먹고, 서민 대출자들이 자지러지는 동안 은행들은 사상 최대의 예대마진에 숨죽여 웃는다. 대기업과 하청 근로자는 원수가 됐고, 공권력이 한가해진 틈에 금융사기가 범람한다.
尹 대통령 취임초 20%대 전례없는 지지율
국민위해 천개의 얼굴 갖고 각성 촉구한다
위기 앞에 짱짱했던 공화국의 기운이 탁해졌다. 국민은 본능적으로 위기에 민감하다. 그 민감한 촉으로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정치 신인에게 신생의 기운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 윤석열이 위기에 처했다. 취임 초반 대통령의 20%대 지지율은 처음이다. 전례 없는 지지율이 대통령 윤석열을 새로 세우는 동력이 되길 바란다. 정치는 관대함이 잔인한 파국을 잉태하고 잔인함이 자비로운 결실을 맺는 영역이다. 대통령은 나라와 국민을 위해 천개의 얼굴을 가져야 한다. 윤석열의 각성을 촉구한다. 대한민국은 예나 지금이나 대통령의 위기를 더할 여유가 없는 위기의 나라이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