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는 글자마다 일일이 외워야 하는 데다 어순도 우리말과 다르며, 상황과 맥락에 따라 발음도 달라진다. 가령 대개는 북녘 북(北)을 '북'으로 읽고 쓰지만, 패배(敗北)의 경우처럼 '북'을 '배'로 쓰고 읽기도 한다. 이 외에도 많은 사례들이 있으나 가장 헷갈리고 확실하게 알지 못한 채 관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경(更)과 갱(更)이다. 경신(更新)과 갱신(更新)이 특히 그러하다. '고칠 경'과 '다시 갱' 두 가지 음과 뜻으로 다 사용되기 때문이다. 한자는 똑같은데 어느 때 '경'이고 어느 때 '갱'이 되는가. 운동경기·대통령 지지율·출산율·시청률 등 새로운 기록을 다시 세울 경우에는 '경신'이라 읽지만, 임대차계약서·운전면허증·여권처럼 기간과 기한이 있는 것을 연장할 때는 '갱신'이라 한다.
요즘 우리 사회는 '갱신'보다는 '경신'이 우위에 선 모양새다. 집권 두달 만에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로 급전직하했고, 물가지수와 부동산 거래에서 연일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서울, 경기의 상반기 아파트 매매건수가 전년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강남불패의 신화도 무너지고 있는 중이다. 부동산 거래의 지표 구실을 하는 강남 4구의 아파트 거래량도 반 토막이 나서 전년대비 5천988건에서 2천737건으로 급감했다.
휘발유 가격은 지난 3월 1일 이후 8월 들어 처음으로 전국 평균 1천897.3원으로 내려갔으나 배추가 89%, 오이가 75%, 무가 68.7% 급등했다. 연일 기록을 '경신'하는 소비자물가에 서민들이 울상이다. 미국·유럽·일본 등 세계 도처에서 양적 완화를 통해 경기침체를 극복하려는 상황에서 우리 역시 재난지원금과 방역 등으로 재정 지출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났고, 여기에 가계부채와 기업부채도 매우 우려되는 수준이다. 지금의 가파른 물가상승은 공급이 달려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환율 등 화폐의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지지율과 경제회복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다. 이럴 때 지지율과 인기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소신껏 밀고 나가야 한다. 정권 '갱신'보다는 나라와 경제를 위해 경제지표의 '경신'에 집중해야 한다. 지지율이 급락한 윤 대통령과 정부에 지금 필요한 것은 미움받을 용기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