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 먹는 한 끼의 식사. 내가 무엇을 먹었고, 얼마나 먹었는지를 눈으로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화성 엄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 '푸드 체인 프로젝트'는 마치 하나의 작은 슈퍼마켓을 옮겨온 듯했다. 전시장에는 하얀 석고로 만들어진 음식과 음식재료들이 종류별로 늘어서 있다.
버섯과 피망, 토마토부터 치즈, 갈아낸 고기, 크루아상, 피자 등 다양하다. 배추의 이파리, 호두의 딱딱하고 주름진 표면, 잘 튀겨져 소복이 올려진 팝콘, 풍성한 콜리플라워 등 작품의 디테일이 새삼 신기하면서도 흥미롭다.
이타마르 길보아, 식사일기 시각화
슈퍼마켓 옮겨온 듯 음식 디테일 생생
놀랍게도 이 모든 음식은 작가 이타마르 길보아가 먹은 것들이다. 이스라엘 출신의 작가는 20여 년 전 미술 공부를 하기 위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가 정착했다. 사는 나라가 달라졌으니 먹는 것 또한 달라졌다.
어느덧 살이 찌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작가는 다이어트를 시작하며 식사일기를 적었다. 작품은 그가 먹고 기록한 것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작가 개인의 호기심에서 시작된 작품들이지만, 의미를 떠올리는 순간 흠칫하게 된다. 엄미술관에 전시된 1천여 개의 음식과 재료들은 단지 며칠 분에 불과하다고 했다. 작가가 먹은 것들을 보며 그의 식습관을 어느 정도 눈치챌 수 있었다.
주로 빵과 피자, 인스턴트 식품의 종류가 많았고, 생선과 같은 식재료는 많지 않았다. 이렇게 많이 먹는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동안 무엇을 먹었는지를 나열해보는 순간 묘한 감정들이 느껴진다. 과연 우리가 지난 일주일간 먹은 음식들을 펼쳐본다면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저절로 상상하게 되는 지점이었다.
금색 '정크푸드' 끊기 어려운 욕망 투영
한국 첫 전시… 수익 '식량 NGO' 기부
작품 사이사이에는 금색으로 칠해진 작품들도 눈에 띈다. 어떤 음식들이 이러한 화려한 색을 가지게 됐을까 살펴보니 햄버거, 피자, 아이스크림, 도넛 등 소위 말하는 '정크푸드' 들이다. 몸에 좋지 않은 것을 알지만 먹으면 맛있고, 쉽게 끊어낼 수 없는 음식들에 금처럼 특별하면서 소유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투영했다.

이번 '푸드 체인 프로젝트'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일종의 팝업 슈퍼마켓의 형태로 만들어져 있는 전시장에서 관객들이 물건을 담듯 작품을 사면 그 수익금 중의 일부가 식량 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서는 NGO 단체에 기부된다.
먹은 음식이 작품이 되고, 작품을 판 수익금이 다시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니 말 그대로 음식이 사슬처럼 연결돼 선순환하는 구조를 만들어 낸다. 더 나아가 전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식량 전쟁'에 대해 생각해보는 등 동시대의 음식 담론을 공유하는 주제로까지 확대된다.
작가는 지난 2013년 프로젝트를 탄생시킨 뒤 최근까지 세계 곳곳의 도시들을 돌며 순회 전시를 펼치고 있다. 한국에서의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음식이라는 단순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주제로 다가온 이타마르 길보아의 '푸드 체인 프로젝트'는 10월 9일까지 계속된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