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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시대 자유진영에서 대만은 유일한 중국 정부였다. 우리도 대만을 자유중국으로 호칭했고,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은 '중공'이라 일개 정당 집단으로 홀대했다. 1971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유엔에 가입해 '중국' 국호를 독점하면서 대만의 국제적 지위는 처참하게 추락했다. 미국, 한국 등 냉전자유진영의 동맹국과 우방국들이 중국과 수교하면서 국제적 고립은 더욱 심화됐다. 적수공권 대만을 지킨 건 민주주의와 경제였다.

대만 헌법상 중국 본토는 미수복 지역이다. 장개석 국민당 정부를 계승한 대만 정부가 본토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주장이다. 6·25 전쟁 때 한반도에서 쫓겨난 대한민국이 제주도에서 정부를 이어가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맞서는 처지를 상상하면 비교가 쉽다.

중국 입장에서 보면 택도 없는 소리다. 중국도 당연히 대만을 자국 영토의 일부로 본다. 그래도 중국이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에 도전하기엔 국력이 부족했던 시절엔 무력 통일은 자제했다. 대신 경제, 정치적 영향력으로 대만을 중화 문화권에 가두는 데 그쳤다.

시대와 상황이 급변했다. 중국이 미국에 선전포고급 군사 시위를 감행했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이 격돌의 방아쇠가 됐다. 중국은 펠로시의 대만 방문을 주권 침해로 규정한다. 자국 영토에 허락 없이 방문했다는 것이다. 펠로시는 굴하지 않고 중국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세계가 독재와 민주주의 사이의 선택에 직면한 이때 대만인에 대한 미국의 연대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인권 탄압도 직격했다.

중국은 대만 해역과 상공을 항모와 전투기로 포위했고, 미국도 항모전단과 전투기를 급파했다. 분이 안 풀린 중국은 대만에 경제보복을 단행했다. 당장 대만 금문도를 포격해도 이상할 것 없는 형국이다. 동아시아 패권을 놓고 중국의 도전과 미국의 응전이 현실이 됐다.

펠로시 의장이 대만을 거쳐 어제 입국해 오늘 일본으로 출국한다. 펠로시의 대북 발언 수위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된다. 싱가포르-말레이시아-대만-한국-일본으로 이어진 펠로시 라인은 향후 미·중 패권 전쟁의 최전선이다. 양국간 군사, 경제, 외교 총력전은 피아 구분을 확실하게 요구할 테고 남북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은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