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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연극 '산재일기'(이철 작·연출, 7월4~10일, 전태일기념관 울림터)는 산업재해를 소재로 우리 사회의 위험 지도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이 위험 지도는 인터뷰를 기반으로 하여 대본을 구성하고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여주는 것처럼 무대를 연출하는 방식으로 제작하였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산업재해로 쓰러지고 남겨진 사람들이 이어서 말하고 쓴 보고서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 붉은 기록의 면면은 이렇다. "이 사람들을 연료 삼아서 자기 밥줄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있어요. 저는 전문가도 그렇고 정치인도 그렇고 공무원도 그렇고 일하는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얘기를 연료 삼아서 먹고산다고 생각해요.", "그 하청이라는 게 없어지지 않으면 이 죽음이 안 없어지는 거지. 똑같이 간다고 고용 구조와 산재가.", "그전까지 회사 다녀서 암 걸린다는 생각을 누가 했겠어요.", "근데 이제야 뭔가 보이는 거예요. 저희가 알바 했던 곳들이 얼마나 위험한 현장들이었는지.", "그전에도 계속 죽고 있었는데 그리고 죽음이라는 게 언제나 가장 극한의 상황인데, 그전까지 그걸 당연하게 죽는다고 생각하고 문제 삼지 않았다는 게 너무 신기하지 않나."

위의 붉은 기록에는 산업재해 당사자도 있고, 그 동료도 있으며, 활동가도 있다. 이들은 자신이 속한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지만 하나의 공통 감각을 갖고 있다. 혼자 고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 목소리가 전해질 수 있도록 함께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 울림을 이어가는 사람이 옆에 함께 서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절차는 아무리 소소해도 사소하지 않다. 연극 '산재일기'는 그렇게 위험 지도를 함께 그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동시에 그 목소리를 함께 연대하는 장치 그 자체이다.


'반복적인 참사' 산업재해 소재로
사회 위험지도 그리는 '산재일기'


녹색병원은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중독 환자들의 직업병 인정투쟁의 성과로 설립된 병원이다. 녹색병원 원장의 다음 대사는 원진레이온 사건의 또 다른 이면을 전해주고 있다. "유해 물질은 약한 곳으로 번져 나갑니다. 원진에 들어간 기계가 일본에서 온 거였어요. 1963년도에 들어왔는데요. 차관 형식으로요. 그 시기에 원진 같은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몇백 명 발생했던 거예요. 우리나라는 그걸 중국에 팔았습니다. 중국도 사고를 겪었죠. 이후에 그게 또 북한에 들어갔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런 유해한 물질들은 점점 제3세계로, 약한 나라로 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이미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그 기계를 들여온 것이다. 그 기계를 돌리면 노동자가 사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바로 그 기계를 중국에 팔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본의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그 기계가 한국의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그 기계가 중국의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무엇이 이와 같은 선택을 하게 하는 것일까. 대체 어떤 사회라서 이와 같은 일이 작동하는 것일까.

'어떤 대가 치르더라도' 구절 대신
'…치르지 않고'라는 대사로 바꾸는
"사회 전환" 외쳐야 하지 않을까


성장에 대한 강박에서 놓여나지 못하는 사회에서 유행하는 담론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성장제일주의로 무장한 사회가 끊임없이 신화화하는 담론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 목록의 앞자리에 비용은 줄이면 줄일수록 좋다는 말이 있다. 이 문장 바로 뒤에는 이 문장보다 더 크고 굵은 글자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라는 구절이 함께 적혀 있다. 뒤에 놓인 짧은 구절이 앞에 놓인 문장을 잡아 먹어버린 형국이다. 이러한 담론에 포획된 사회에서 내리는 결정과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그 참사가 얼마나 크고 반복적이었는지를 연극 '산재일기'는 기록하고 있다.

이제라도 뒤에 놓여 있는 구절을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라는 구절을 삭제하고 그 자리에 어떤 대가도 치르지 않고라는 구절을 기입해야 하지 않을까. 최근 사회의 전환을 말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연극 '산재일기'에 등장하는 목소리와 그 목소리를 무대에 올리기까지 옆에서 함께한 사람들도 우리 사회의 위험 지도를 전환하고자 하는 그 하나가 아닐까.

/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