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야당이 그닥 거센 공격을 퍼붓는 것도 아니다. 어쩌다보니 야당도 당 체제 정비를 위한 비대위를 가동하고 있는 형편이다. 제 코가 석자인 마당에 여당이나 정권을 향해 이렇다 할 공세를 취하는 형국도 아니다. 야당에서 당 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가 진행 중에 있지만, 국민들 관심은 야당보다는 자중지란에 빠져있는 정권과 여당을 향해 있다. 대통령실 참모진을 인적 쇄신해야 한다느니, 여당이 조기 전당대회를 해야 한다느니, 각기 나름대로 해법들은 제시하고 있지만 본질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마당에 미봉책으로 덮고 지나갈 일은 아니다.
0.73%p차 절반의 승리로 정권을 거머쥔 대통령과 여당이라면, 나머지 절반의 민심을 얻어내는 데 더 공을 기울였어야 했다. 가뜩이나 의회 내에서 다수야당에 밀리는 소수여당이라면 정권의 안정된 기반을 획득하는 데에도 공을 기울였어야 했다. 공정과 정의를 슬로건으로 내걸었을 뿐 이렇다 할 내용을 아직 보여주지 못하는 형편이라면, 그 콘텐츠를 채워가는 데 더 공을 기울였어야 했다.
더 큰 문제는 국민들은 아직 이 정부가 내세우는 철학이 무엇인지를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 철학이 공감이 되었다면 인사나 정책의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여당 내 권력다툼은 왜 생기고 있는지도 다르게 읽힐 수 있다.
집권여당이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뒷받침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그 노선투쟁이 벌어졌던들 그것을 가지고 뭐라 할 국민이 누가 있겠나? 철학이 무엇인지 모르는 마당에 공감할 여지가 있을 리 만무하다. 여가부를 폐지하든, 만 5세 조기입학을 시행하든, 그 정책들을 관통하는 철학이 무엇인지 국민들은 궁금할 따름이다. 그 정책들이 어떤 이념적 기반 위에 출발하고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하지만 지금 여당에 보이는 것은 이념이 아니라 완장이다. 마치 축구 경기에서 벌어지는 선수들의 몸싸움처럼, 권력의 노른자위에서 벌어지는 포지셔닝 싸움뿐이다. 정권의 기반마저 흔들어대고 있는 정치적 불확실성은 정권과 여당이 스스로 초래한 측면이 크다. 판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가도 모자랄 판에 대통령과 여당은 도리어 불확실성을 키우는 우를 범했다. 판을 읽고 비전을 만들어가는 정치적 기획력을 정권과 여당은 보여주지 못했다. 정치적 상상력이 자유롭지도 못했고, 내용을 채워가는 정책적 생산능력이 풍부하지도 못했다. 상대와 함께 가는 포용력도 크게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철학을 바로 세워야 한다. 대통령이 나토를 방문한다면 왜, 청와대를 이전한다면 왜 그래야 하는지를 그 철학을 통해 국민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인적 쇄신을 한다면 사람만 바꿔 끼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어떤 이념과 철학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인지가 설명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철학이다.
이준석의 '비단주머니'가 선거 이후에 무엇을 남겨놓고 있는지도 되돌아봐야 할 대목이다. 그 '비단주머니'가 선거 와중에 얼마나 더 많은 표를 끌어모았을는지 알 수 없지만, 젠더를 가르고 세대를 가르는 그 선거공학이 선거에 표를 끌어모은 것 만큼이나 정치에 또 어떤 폐해를 가져왔는지도 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 나선 이재명 후보가 '특정계층은 계급배반투표를 한다'면서 논란에 불을 당기기도 했지만, 정당이 제아무리 계급적 이데올로기로 유권자들을 현혹하려 든다 해도, 유권자가 그 허위의식에 쉽게 빠져들지 않는 것만으로도 정책정당은 충분히 실현될 여지가 있다는 점이 간과돼서는 안 된다. 유권자들의 입장에서도 지난 선거과정에서 과연 국민들이 바랐던 것은 무엇이었는지도 스스로 되돌아볼 일이기는 하다.
문제는 철학이다. 공정과 정의의 슬로건으로 구현하고자 했던 가치는 무엇이었는지, 그것을 위해서 대통령과 여당은 어떤 비전과 이념을 내세우고 있는지, 유권자의 요구가 투영되는 것이 정치라면, 그 비전과 이념이 유권자들의 어떤 요구와 기대에 맞닿아 있는지, 그 접점으로부터 다시 시작할 일이다.
/고성원 정치칼럼리스트·인천미래구상포럼 대표패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