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출범한 한국프로야구(KBO)리그 원년 팀 '해태 타이거즈'는 선수가 15명에 불과했다. 사회인야구 시절보다 몇 곱절 늘어난 정규리그를 소화하느라 선수들은 매 게임 출전해야 했다. 타자 전원이 주전이었고, 투수들은 연투에 지쳐 팔이 늘어날 지경이었다. 선수들 기력이 바닥나자 팀 성적도 추락해 전·후기 4위(6개 팀)에 그쳤다.
구단은 고육책으로 김성한 선수가 투타를 겸하도록 했다. 열악한 팀 사정이 '오리 궁둥이'를 원조 '이도류(二刀流)'로 떠민 것이다. 타이거즈에서 프로생활을 마친 원클럽맨 김성한은 단일 시즌 10승-10홈런, 30홈런, 20-20클럽, 통산 1천안타, 2천루타, 700득점 기록을 남겼다. 해당 부문 모두 KBO 리그 최초란 수식어가 붙는 대기록이다. 프로야구 출범 40주년을 맞아 KBO가 선정한 '레전드 40인'에 원년 멤버로 박철순, 이만수, 백인천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LA 에인절스 오타니 쇼헤이가 150년 넘는 미국 프로야구 역사를 다시 썼다. 오타니는 지난 10일 열린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원정경기에서 시즌 10승 달성에 성공했다. 선발 등판해 6이닝 4안타 3볼넷 5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타자로도 나서 대기록을 자축하는 시즌 25호 홈런을 터뜨렸다. 시즌 성적은 투수로 10승 7패, 평균자책점 2.68, 157탈삼진, 타자로는 타율 0.256, 25홈런, 66타점을 기록 중이다.
'10승-10홈런'은 메이저리그(MLB) 역사상 두 번째다. 클럽 원조는 1918년 시즌 타율 0.300, 11홈런, 61타점, 13승 7패, 평균자책점 2.22에 빛나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전설 베이브 루스(Babe Ruth). 이듬해에도 29홈런을 때렸으나 1920년 뉴욕 양키스로 이적하면서 투수 장갑을 벗었다. KBO 리그 타자 중에 이도류 자질을 지닌 선수가 많다. KT 위즈의 간판 강백호는 고교 시절 140㎞ 후반대를 뿌리는 강속구 투수였다. 국민타자 이승엽과 영원한 현역 추신수, 이대호 선수 역시 고교 시절 에이스 투수 출신들이다. 강백호와 이승엽이 선발로 나서고, 추신수와 이대호가 구원 투수로 나서는 게임은 상상만 해도 설렌다.
팬과 언론은 흥분하는데 오타니는 무덤덤한 표정이다. 인터뷰에서 "투타를 뛰는 선수가 없어서지 겸업이 흔해진다면 평범한 기록"이라며 운동장을 떠났다. 만화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고도 별일 아니라는 오타니가 순간 얄미워졌으나, 세기의 보물을 가진 일본팬들이 더 부러워졌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