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방송된 '종합병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의학드라마다. 종합병원답게 다양한 전문의들이 등장하지만, 시청률 견인차는 외과 수술 장면이었다. 시청자들은 유혈이 낭자한 수술방에서 환자를 살리려 분투하는 외과의들의 수술 집도 장면에 몰입한다. 의학드라마 주인공 대부분이 외과의사인 이유이다.
거대병원의 권력 암투와 이윤추구에 환멸을 느껴 한적한 시골의 돌담병원에 은거한 '낭만닥터 김사부'도 일반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전문의 자격을 가진 트리플보드 의사이다. "우리가 왜 사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에 대한 질문을 포기하지 마라. 그 질문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의 낭만도 끝나는 거다." 시청자들은 환자 살리는 일이 의사의 낭만이라 여기는 김사부에게 열광했다.
천재 자폐 의사가 주인공인 '굿닥터'는 소아외과 분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켰다. 볼펜 크기의 미숙아 수술과 그보다 작은 태아 수술을 담당하는 소아외과가 불합리한 의료보험체계와 이익만 추구하는 병원때문에 홀대받는 현실을 고발한 덕분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외과의사들의 고군분투를 다룬 앞선 드라마들의 클리셰를 전복했다. 의대 동기인 흉부외과, 소아외과, 간담체외과, 신경외과, 산부인과 의사들이 밴드활동도 하고 사랑도 나누며 폭주하는 업무를 슬기롭게 감당한다는 스토리다. 마치 외과의사들을 위로하는 듯한 역발상이 잔잔한 감동을 남겼다.
그러나 현실에선 외과의사들이 없다. 최근 대형병원인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졌는데 수술 의사가 없어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사망했다. 이 불행한 아이러니로 외과의사 고갈 실태가 사회 현안으로 급부상했다. 외과뿐 아니다. 지방 병원엔 오래전에 산부인과 의사 씨가 말랐다.
외과는 환자의 생사에 직접 관여하는 필수 의료분야이다. 적정 인력의 외과 의료진 유지는 필수적인 사회 안전망이다. 출산을 애국으로 떠받들기 시작한 나라에서 산모가 진통을 견디며 산부인과를 찾아 헤매고, 미숙아와 태아를 돌볼 소아외과 의사가 없다니 어쩌자는 말인가.
이국종 교수가 석해균 선장을 살려내면서 중증외상 분야에 눈 뜬 나라이다. 대형병원 간호사의 희생이 외과, 산부인과 등 필수 의료진 고갈 사태를 해결할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 원인은 다 나왔다. 대책만 서두르면 된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