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쉴 새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는 서양화가 박진화(56)가 잠시 호흡을 고르고 한국을 떠나 일본으로 향한다.
박진화 작가는 오는 29일부터 11월 중순까지 일본 시가현에 있는 정엄원이라는 불교 사원에 있는 '레지던시'에 머무르며 폴란드, 우크라이나, 스웨덴, 일본 등 여러 나라의 작가들과 함께 작업하고 전시도 진행할 예정이다.
박 작가가 해외 레지던시에 머무르며 여러 나라의 작가들과 교류하며 작업하는 경험은 처음이다.
그는 "그동안 내 작업만을 위해 뛰어왔다면 이젠 조금 천천히 걸으며 주위도 보고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는 기회를 갖게 된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라며 "다른 작가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동안 제가 해보지 못한 생각, 새로운 시각 등을 경험하는 소중한 시간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그는 "작가는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내 것을 다 버리고 올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해본다"면서 "나를 버리고 아무도 나를 잘 알지 못하는 곳에서 하얀 도화지 위에 새롭게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인천 출신 2013년 인천미술대전 최우수
뒤늦게 시작… "절박한 마음으로 작업"
내일까지 '잇다스페이스' 초대전 개최
박 작가는 인천에서 태어나서 성장한 인천 토박이다. 그림을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는 1980년대 학번이다. 대학에서 미대에 다녔지만, 순수미술이 아닌 디자인을 전공했고 디자이너로 일했다. 결혼 후에는 그림을 잠시 잊고 두 자녀의 엄마와 아내 역할을 하며 전업주부로 살아왔다. 누군가의 아내와 엄마로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듯 그도 힘겨운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힘든 시기를 보내던 어느 날 그는 서울시립미술관에 걸려있는 천경자의 그림을 만났다. 그는 당시 "그림이 좋았고, 나도 무작정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생겼다"고 했다.
이후로 1~2년을 혼자 작업을 했는데, 매일매일 그렸다고 한다. 그러다 우연히 출품한 2013년 인천미술대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2017년 첫 개인전을 가졌고,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도 마쳤다.
박 작가는 "뒤늦게 작업을 시작했는데, 그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은, 아니 못한 세월이 너무 아쉬웠고 또 억울했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겐 미안하지만 그림을 시작한 뒤로는 아이들한테 최소한의 시간만 썼다. 나머지 모든 시간은 '그림'에 쏟아 부었다고 한다. 그는 "하루에 두세 시간 잠을 잤을까요? 잠을 자는 시간도 아깝고 죄스럽고, 그림한테 미안하고 그런 절박한 마음이었다"고 했다.
박 작가는 그림을 그리면서 오직 자기 자신만을 생각했단다. 그는 "수용자 즉 관람객에게 위안을 주고 싶어 작품활동을 하시는 작가분들이 있는데, 저는 당시 그 순간만큼은 오직 저 자신의 위안을 위해 작업을 했다"며 "창작 활동을 통해 내가 받은 위안이 컸다. 나를 위한 그림이었고 그림이 나를 살 수 있게 해줬다"고 말했다.
박 작가는 "전시회에서 내 그림을 감상하는 관람객의 뒷모습을 보면 언제나 힘을 받는다"면서 "내가 나를 인정할 수 있을 때까지, 내가 죽는 날까지 작업을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이달 초 인천 '잇다스페이스'에서 시작된 박진화 작가의 초대전 '나란히, 함께'는 오는 24일 마무리된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