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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
한국인들의 일본 식민지배 콤플렉스처럼 독일인들은 홀로코스트 멍에를 지니고 산다. 아돌프 히틀러 통치 기간(1933∼1945) 내내 600만 유태인들을 탄압하고 학살한 사건이다. 유색인종, 집시(로마니), 장애인들의 생명도 열등 인종청소란 구실로 앗아갔으나 유태인들이 절대다수여서 홀로코스트는 유태인 대학살로 이해되고 있다.

강제수용소에 수감된 유태인 등에게는 왼팔 상박(上膊) 안쪽에 알파벳과 숫자로 조합된 개인식별 문신들을 새겼다.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유태인 등은 현대식 컴퓨터의 초기버전인 펀칭(천공)카드 시스템에 의해 특별관리되었다. 미국 인구조사국 직원 홀러리스(H. Hollerith, 1860~1929)가 천공(穿孔)카드에 개개인들의 성별, 국적 및 직업 등을 표시한 데서 비롯되었다. 홀러리스는 이 시스템을 사업화하고 1910년에 독일에 자회사 데호막(Dehomag)을 설립했으나 이듬해에 사업 전체를 다른 사람에 매각했다. 이 회사는 1924년에 상호가 IBM(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s)으로 변경되었다. IBM의 독일 자회사 데호막은 나치 치하의 인구조사작업을 펀칭카드로 정리해 히틀러의 인종청소 프로젝트에 크게 기여했다. 디지털시대 선도자이자 미국의 상징인 IBM의 흑역사(黑歷史)이다.

요즘에는 신체 특정 부위에 문신(타투)을 한 이들이 자주 눈에 띈다. 통계에 따르면 약 1천300만 명의 국민이 눈썹 문신을 비롯한 각종 시술을 받았을 만큼 타투는 대중화됐다. 문신은 바늘로 살갗을 찔러 피부 속에 먹물을 침투시키는 행위로 작업도 어렵지만 지우기는 더 어렵고 돈도 많이 든다. 문양이나 크기에 따라 최하 수십만원 이상임에도 남녀노소 불문하고 경쟁적으로 피부를 훼손하고 있다. 국내 타투 산업의 규모도 1조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추산되었다.  


죽어도 안 지워지는 잉크문신보다 더 고약
SNS·신용카드 등 일상 상호작용 흔적 남아


그러나 잉크문신보다 훨씬 고약한 것이 디지털문신(흔적)이다. 잉크문신은 옷으로 가리거나 사망하면 없어 지지만 전자문신은 본인이 죽어도 지워지지 않는다.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포털 검색, 네이버, 카카오톡은 물론 스마트폰, PC, 보안카메라, 신용카드, 자동차 등에서의 일상적 상호작용 흔적들이 사용자들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남는 것이다. 심지어 유튜브에서 '좋아요'를 몇 번 눌렀는지도 모두 기록으로 남겨진다. 일단 디지털세계에 발을 들여 놓은 자체만으로도 삭제가 전혀 불가능하다.

빅테크기업들의 이용자 개인정보 수집은 경악할 수준이다. 구글이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은 고객들의 스마트폰에 깔린 수많은 앱들을 통해 정보를 얻는다. 고객들이 인터넷에서 단 한 번 검색한 단어는 물론 호텔이나 식당 예약, 심지어 스마트폰의 달력에 메모한 개인일정 정보까지 긁어모아 실시간으로 광고주들에 팔아넘기는 것이다. 메타(페이스북)는 이런 식의 광고 매각으로 전체수익의 98%를 올린다.

문제는 빅테크 뿐 아니다. 모든 이기(利器)들이 빠르게 스마트화되면서 사용자들에 대한 정보수집 범위가 훨씬 광범위해진 것이다. 덕분에 현대인들은 재소자들을 완벽하게 감시하는 판옵티콘(원형교도소)의 수감자로 전락했다. 한 위치추적업체의 CEO는 사용자들을 추적해서 얻은 정보량 관련 질문에 "이런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그냥 계속 모르는 채로 사는 게 낫다"고 언급했다.

모든 이기들 스마트화로 정보 수집 광범위
현대인 재소자 감시 '판옵티콘 수감자' 전락


각종 디지털 흔적들의 영구 보존도 고민이다. 기업들은 이용자들이 자신의 사이트를 단 한 번 클릭한 사실까지도 무한대(?)의 창고 속에 방문 시간 순서대로 차곡차곡 쌓아둔다. 데이터 분량이 많을수록 사물에 대한 보다 정확한 분석과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수집된 각종 자료들은 이용자들의 사후에도 영구히 보존된다.

미래학 권위자인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후안 엔리케즈 교수는 "어쩌면 당신 손자들은 당신이 과거에 어떤 이들과 사랑을 나누었는지, 누구 집에서 잠을 잤는지, 임신중절은 몇 번이나 했는지 등을 뒤져보며 낄낄거릴지도 모른다"며 우려했다. 디지털문신의 저주에 모골이 송연하다.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