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달력이 세 개다. 전 세계가 함께 공유하는 그레고리력, 달을 기준으로 한 태음력, 그리고 절기력(節氣曆)이다. 절기력이란 황도(黃道) 즉 지구의 관점에서 본 태양의 궤도를 기준으로 절기를 나눈 일종의 태양력이다. 24절기는 춘분을 기준으로 15°간격으로 만든 24개의 절기를 말하는데, 절기는 15일 간격으로 72후의 후(候)는 5일 간격으로 생겨나는 미세한 계절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참고로 사주명리학과 육임학에서는 이 절기력을 쓴다.
23일 어제는 처서였다. 처서는 24절기의 입춘을 기준으로 보면 14번째 절기로 '더위가 물러나 수그러지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처서와 관련된 속담도 많은데, '처서가 지나면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라든지 '처서에 비오면 흉년 든다'는 말 등등이 그것이다. 말복 더위를 지나 겨우 한숨 돌리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때가 바로 처서인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이 절기력이 꼭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환경오염으로 인해 세계 도처에서 온난화 등 온갖 기상이변들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인강이 말라버릴 정도로 찾아든 유럽 지역의 유례없는 가뭄, 양쯔강(중국인들은 양쯔강이란 말을 싫어해 장강이라고 부른다)의 가뭄,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 닥친 폭염 등이 그러하다.
이 같은 기후변화는 우리도 마찬가지여서 제주 앞바다에서 열대어가 발견되고 한국에서 바나나 재배가 가능해졌으며, 사과 재배지가 경북에서 강원도로 옮겨왔거나 확장됐다. 또 장마가 재차 찾아와 중부지방에 폭우 피해가 속출한 반면, 남부지방에서는 한동안 강수량이 부족하여 주요 댐 저수율이 20~30%를 밑돌았다. 기후변화는 이제 더 이상 이변이 아니라 일상이며,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됐다.
현대문명은 서로가 서로에게 가해자이며 피해자가 되게 하는 구조다. 더 늦기 전에 전 인류가 합심하여 기후변화, 환경재앙을 막아야 한다. 절기력의 본질은 사전 예고에 있다. 봄과 가을이 시작되기 전에 봄과 가을을 미리 준비하고, 여름과 겨울이 오기 전에 여름과 겨울을 준비하라는 신호인 것이다. 처서에 지구가 보내는 신호와 예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물 한 방울, 전등 하나, 비닐봉지 한 장도 정말 꼭 필요한 것인지 생각하고 신중하게 써야 하는 시대가 왔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